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츠타야 –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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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츠타야

DATE. 2021.02.10.

다이칸야마 츠타야 방문기

 

내가 일본에 있는 츠타야 중에서 다이칸야마 츠타야를 처음 방문한 건 2016년 봄이었다. 당시 나는 가고 싶었던 회사에 이직하기로 결정되어 있었고 출근하기까지 2주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다니며 자유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라이프스타일을 팔다> 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의 표지 이미지에는 나무가 울창한 숲과 흐드러지게 핀 해바라기가 있었는데 묘하게 촌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마치 먼 친척 어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표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제목이 마음에 들어 책을 펴보았던 것이 내가 츠타야에 관심을 두게 된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이 책은 한 권의 기획서다. 일본에서 큰 서점 체인을 운영하는 회사가 도쿄의 어느 부촌에 대형 서점을 기획하여 세우고, 그 서점을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라이프 스타일을 사고파는 컬처타운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커다란 서점을 운영하는 것을 꿈꾸어 왔다.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서점은 커피, 음악, 영화, 책 등이 어우러질 수 있는 문화 공간이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해 문화 활동을 하고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는 넓은 범위의 서점이 되었으면 했다. 이렇게 멋진 서점을 운영하는 꿈을 단지 꿈으로 남겨 둔 이유는 현실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상상만 해 오던 꿈의 서점이 일본에 이미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자마자 츠타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퇴직금을 받아 현금도 있었고 입사 전 까지 시간도 충분했다.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비행기표를 사서 일본 다이칸야마 츠타야로 갔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2011년, 도쿄 다이칸야마의 4,000평이라는 광대한 부지에 ‘다이칸야마 츠타야점’을 주축으로 여러 매장과 레스토랑 등이 어우러진 라이프 스타일의 상업 시설 ‘다이칸야마 T·SITE’를 오픈했다. 이곳의 모토(motto)는 ‘서점이 창조하는 거리’이며 츠타야 서점을 중심으로 다양한 브랜드의 상점과 독립 아티스트의 편집실이 모여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츠타야에 간 일은 내가 인생을 살면서 충동적으로 한 행동 중에 가장 잘한 행동이었다. 그곳을 다녀온 이후로 내 인생에 또 하나의 테마가 생겼고 더불어 취향과 브랜드에 대한 글을 꾸준히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 이직이나 퇴직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 사이에 가능한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갖기를 바란다. 평소에는 돈 없고 시간 없다는 핑계로 쉽게 하지 못했던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보길 적극 권장한다.

다시 츠타야 이야기로 돌아오자. 나는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츠타야에 찾아갔다. 역에서 가까이 있지 않아서 지하철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 했다. 다이칸야마 지역은 도로와 인도가 깨끗이 정비되어 있었고, 길마다 잘 정돈된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부촌이었다.

간간이 강아지와 산책하거나 러닝을 하는 주민들이 보였고 멋져 보이는 차림의 젊은이들이 여유롭게 쇼핑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용산의 한남동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20분쯤 동네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츠타야에 도착했다. 통유리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잔잔한 주광색 불빛은 아늑해 보였고, 안의 모습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츠타야는 예상대로 엄청나게 커다란 구역이었다. 여러 동의 건물이 소로로 이어져 있었고 여기저기 예쁜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츠타야는 대형 쇼핑몰처럼 현란한 네온을 뿜으며 동네를 어지럽히지 않았다. 마치 이 동네에 항상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따뜻하고 세련된 마을회관 느낌이었다. 나에게 있어 츠타야의 첫인상은 경관을 해치지 않고 주변을 돋보이게 하는 장소였다.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

츠타야는 어떤 회사인가?

이쯤에서 츠타야가 어떤 회사인지 짚고 넘어가자. 츠타야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로, 서적과 음반 그리고 비디오를 빌려 주는 렌탈샵으로 시작하였다. 1983년 츠타야 1호점을 오픈하였는데 좋은 반응을 얻어 체인점을 급속히 확장해 나갔다.

츠타야의 대표인 마츠다 무네아키는 1985년 라이프 스타일 기획사 CCC(Culture Convenience Club)라는 지주 회사를 만들어 츠타야를 CCC의 계열사로 편입하였다. 그가 CCC라는 회사를 새로 만든 이유가 있다. 앞으로는 상품이 가지고 있는 용도 본연의 역할뿐만 아니라 상품 소유자의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문화로 진화하리라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CCC는 츠타야의 수많은 지점을 연결하여 핵심 가치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츠타야 엔터테인먼트, 츠타야 회원의 데이터베이스를 연계한 T 멤버십, 문화 공간 컨설팅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츠타야는 1,000개 이상의 매장과 약 2조 원의 매출을 내고 있는 거대 기업이다. 최근에는 창업 초기의 모델인 오프라인 렌탈샵 형태의 소규모 츠타야 매장은 철수하면서 다이칸야마 츠타야와 같은 거대 복합 문화 공간을 잇달아 런칭하고 온라인몰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체질로 변화하고 있다.

다이칸야마 츠타야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가장 먼저 기획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독립한 소규모 창작자와 프리미어 에이지*를 타겟으로 만들어 크게 흥행하였고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마츠다 무네아키는 50~65세의 프리미어 에이지를 ‘어른을 바꾸는 어른’이라 불렀다. 이들은 새로운 어른의 삶을 이끌어 나갈 첫번째 세대이며 스스로의 삶을 고급스럽게 꾸미기 위한 새로운 소비 세대다.

* 프리미어 에이지: 일본의 단카이 세대. 한국에서는 베이비 붐 세대를 뜻한다. 적게는 50대에서 많게는 60대 후반의 연령층을 포함한다. 이들은 인구 분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곧 은퇴할 나이이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고 급속 성장한 산업 사회를 살아 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를 쌓은 편이다.

 

다이칸야마 츠타야는 어떻게 고객에게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가?

 

좋은 상품에는 좋은 이야기가 있는 법, 콘텐츠를 품은 상품

 

메인 출입구 앞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을 지나 서점으로 진입했을 때 가장 먼저 반기는 카테고리는 라이프 스타일 코너다. 취미, 식음료, 자기 계발 등 생활 밀착형 주제의 도서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조금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각 코너마다 상품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고 상품 근처에 그 상품과 연관되어 있는 책들이 함께 노출되어 있었다. 나는 당시 이러한 형태의 진열을 본 적이 없었다. 요리책 앞에는 다양한 도시락 통과 식자재가 놓여져 있고, 맥주를 소재로 한 책 앞에는 유니크하고 빈티지한 병맥주가 함께 판매되고 있었다.

이들 상품은 책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내세우며 고객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이 상품들의 신뢰는 그 옆에 놓인 책이 담보하고 있었다. 상품이 필요해서 산다기보다 필요한 이유를 만들어서 사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제안이었다.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츠타야의 핵심, 컨시어지

다양한 테마의 라이프 스타일 카테고리를 지나면 하이앤드 퀄리티의 취미 카테고리가 등장한다. 1층 서점 근처 만년필 매장의 벽면은 유리로 되어 있고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만년필과 볼펜이 진열되어 있었다. 중절모를 쓴 중년 남자가 가져온 만년필을 단정한 차림을 한 청년이 이리저리 뜯어보고 있었다. 그는 츠타야가 자랑하는 지적 자본인 컨시어지(concierge) 일 것이다.

‘컨시어지’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이들은 담당하는 상품의 구성부터 판매까지 독자적인 권한을 갖는 담당 분야의 마스터다. 이들은 판매원처럼 상품을 권하지 않는다. 처음 만년필을 시작한다면 어떤 브랜드가 좋을지, 펜촉이 가는 게 좋을지 굵은 게 좋을지 등 필요한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해당 취미로 진입하는 고객들을 돕는다.

컨시어지가 고객을 대하는 태도는 상냥하고 따듯했다. 각 분야별 전문가에게 오직 나만을 위한 컨설팅을 받는 것은 생각보다 멋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좋은 것 중에 최고로 좋은 것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람들로, 아주 오래된 상품 중에서 좋은 것을 찾아 추천할 수도 있고 신상품 중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상품을 추천할 수도 있다.

조예가 깊고 안목이 좋은 컨시어지의 디테일한 조언이야말로 특별한 서비스다. 이들은 고객에게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츠타야의 핵심적 역할을 한다.

*컨시어지: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는 전문인력이다. 주로 호텔 등에서 담당 고객에게 적합한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니저를 뜻한다.

 

고객의 행복은 ‘휴먼 스케일’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주말을 생각해 보자. 느즈막하게 일어나 아침 같은 점심을 먹고 무얼 할지 고민하다가 아울렛, 백화점, 트레이더스 같은 곳들을 떠올린다. 결국 우리는 쇼핑이라는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기 위해 다양한 상업 시설을 방문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업 시설은 정서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답답하고 어두운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상업 시설에 들어가면 상점들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다.

가지각색의 홍보물과 매장 직원의 열성적인 판촉 활동을 접하다 보면 금방 지쳐 버린다. 편하게 앉아서 휴식할 수 있는 공간,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아름다운 조경으로 설렘이 있는 공간은 찾아볼 수 없다. 공간에 대한 투자는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에 모두 무시 되었기 때문이다.

고객의 행복이 아닌 고객의 소비만을 목표로 삼은 쇼핑몰은 안락하지 않다. 하지만 츠타야는 말한다. “고객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곧 비즈니스다.”

츠타야의 휴먼 스케일(human scale)은 인간 중심의 설계를 뜻한다. 하늘이 보이도록 설계한 주차장에서부터 매장을 비롯한 모든 편의 시설을 매출 중심이 아닌 고객 중심으로 기획한다.

이러한 휴먼 스케일이 녹아 든 츠타야는 사람이 돋보이는 곳이다. 상품의 화려한 겉모습보다 그 상품을 접하는 고객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된다. 이곳을 찾는 고객은 그 스스로 공간과 어우러져 다른 고객에게 풍경이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휴먼 스케일은 기술적 효율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상업적으로 비효율이다. 그러나 츠타야는 특색 있는 오프라인 매장이 되어 강력한 브랜드로 인식되려면 상품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또한 앞서 언급한 좋은 구성의 진열과 컨시어지 서비스와 같은 츠타야의 장점은 이러한 휴먼 스케일을 통해 극대화된다.

*휴먼 스케일 : 건축용어로 인간의 체격을 기준으로 한 척도를 말한다. 용어의 활용이 넓어지며 인간의 행동, 자세, 감각 등 인간을 중심으로 설계하는 다양한 산업에서 해당 용어를 사용한다.

 

사람의 행복은 필시 효율의 정반대 방향에 있을 겁니다!

츠타야의 대표 마츠다 무네아키가 한 말이다. 나는 효율적이지 않은 츠타야의 배려가 기억에 남는다. 츠타야를 방문하고 난 후 다른 브랜드나 공간들도 내 돈을 가져갈 때 조금 더 예의를 갖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행복을 베푼다면 기꺼이 나의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

네온 사인을 반짝이며 시선을 훔치고, 각종 옵션으로 계산을 복잡하게 만들어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 어떻게 하면 고객의 돈을 획득할 수 있을지만 고민하는 방식은 이제 그만 접어 두기를 바란다.

‘효율적인 삶은 과연 행복한 삶인가?’ 다년간 IT 회사에 다니며 느껴왔던 나의 오래된 질문이다. 회사는 모든 것을 효율화시키는 곳이다. 효율화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서로 얼마나 잘 효율화했는지를 자랑하고 경쟁한다.

현대의 많은 사람이 점점 회사를 어려워하며 독립적인 노마드를 선택하는 이유는 효율화의 비인간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결핍된 휴먼 스케일을 느끼기 위해 이곳저곳을 방문하고 방황한다. 인간다움은 효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해 기꺼이 비효율을 감수하는 인간성에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다이칸야마 츠타야를 다녀온 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여행을 다녀온 그해 하남에는 복합 쇼핑몰 중 최대 규모인 스타필드가 개관하였고 다음 해에는 코엑스에 별마당 라이브러리가 오픈되었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 프리미엄 아울렛이 생기고 있는데 이들은 현대적인 디자인과 예술적인 조형물을 두어 미관을 향상했고 시설 안에 미술관이나 북카페 등을 도입하는 노력을 보였다.

나는 새로운 곳들이 등장할 때마다 방문하여 살펴보고 있다. 누가 얼마나 더 시대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 느끼기 위해서이다. 아직은 국내에서 츠타야 만큼 만족스러운 시설을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국내도 이미 상품 중심의 커머스에서 콘텐츠 중심의 커머스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상품을 파는 것 뿐아니라 콘텐츠를 전파하려는 브랜드들이 늘어날 것을 예측해 본다. 여기서 말하는 콘텐츠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문화를 담은 패키징이다. 자신들의 상품이 고객 삶의 양식을 어떻게 개선해 줄 수 있을지 생생하게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번 츠타야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주요 브랜드들이 어떻게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는지 나누어 보고 싶다.

 

 

타인의 취향을 엿보는 공간,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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