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씬기행] Punk is (not) dead –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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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서울씬기행] Punk is (not) dead

DATE. 2021.02.19.

서울씬이란? 서울은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다. 강북과 강남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사람들은 거미줄처럼 이어진 지하철을 통해 서울 구석구석을 오간다.

어떤 학자는 경기도와 의정부 인근을 합쳐 ‘대서울’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서울 주변의 위성 도시들이 서울 생활권과 밀접하게 연결된 점을 감안한 제안이다.

서울은 한국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때로는 한국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서울씬이란 ‘서울’이란 지명과 장소, 순간을 의미하는 ‘씬scene’을 합쳐서 만들어낸 조어이다.

서울에서 무너지고 사라지고, 또 생겨나는 공연장, 펍, 카페, 전시장, 영화관 등을 이 서울씬이라는 의미 구조 안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스컹크헬

태초에 드럭이 있었다. 드럭은 홍대 앞에 위치한 락카페로 펑크 음악을 주로 틀어주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공연을 시작했다. 크라잉넛이 부른 ‘말달리자’는 정식 음원이 나오기 전에 이미 홍대의 송가가 되었고 인디의 시작을 여기서 찾는 사람도 있다.

인디란 무엇일까.

90년대만 하더라도 인디는 곧 펑크 음악을 의미했다. 영국의 60년대 음악 사조에서 유래한 시끄럽고 빠른 음악이다. 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영국 여왕을 모욕하고 공중파 방송에 나와 쌍욕을 해댔다. 섹스 피스톨즈라는 이름으로 설명되는 음악이다.

그런데 어째서 한국이란 나라에서, 이 동아시아의 작은 반도 국가에서 먼 섬나라의 음악이 유행하게 된 걸까. (드럭 시절의 펑크는 주로 미국 펑크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혹자는 90년대 IMF를 겪으면서 많은 청년들이 실업상태에 몰려 펑크 음악을 찾았다고도 한다. 하지만 찌질한 감성의 대변자인 장기하가 서울대 출신인 것처럼 인디 펑크의 대표격인 크라잉넛 멤버들도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아무 문제 없이 자란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IMF가 펑크를 불러냈다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깊은 사정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펑크 이전에 한국에서는 그런지 음악이 수용됐다. 커트 코베인의 사망 1주기를 맞아 1995년 4월 5일 열렸던 드럭의 추모 공연을 인디의 시작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크라잉넛이 내세운 ‘조선 펑크’라는 네이밍과 함께 커트 코베인의 죽음이 드리운 우울한 그림자가 홍대 앞 인디의 한 축을 차지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2가지 사건 모두 ‘드럭’이라는 작은 지하 공연장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모던 락을 주로 틀었던 클럽 스팽글과 함께 드럭은 홍대 앞 인디를 구현한 상징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드럭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2000년대 스컹크헬이라는 펑크 클럽이 들어서기에 이른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이름은 원종희, 럭스 같은 것들이다.

럭스는 공중파 방송에서 성기 노출 사건에 휘말렸던 밴드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물론 당시에 성기 노출을 했던 것은 럭스의 친구들이었던 다른 밴드의 멤버들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럭스라고 하면 음악방송 성기 노출 사건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럭스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과 함께 한국 펑크를 대표하는 스트리트 펑크 밴드이다. 인터넷에 원종희씨 이름을 치면 소고기 절도 사건이 뜨기는 하지만 이는 젊은 날의 치기 정도로 넘어가도록 하자.

스컹크헬은 2세대 펑크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스컹크 레이블을 중심으로 음반 출시와 공연을 스스로 해냈던 사람들의 아지트였다. 럭스의 리더이자 스컹크 레이블과 스컹크헬의 대표인 원종희씨는 중학생 나이 때 이미 밴드를 시작해서 20대의 나이에는 펑크 집단의 중심이 되었다.

스컹크헬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건 A4 용지에 인쇄된 공연 플라이어였다. 수천장의 공연 광고지가 천장과 벽에 붙어 있어서 본래의 벽 색깔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공연장 내부는 금연이었지만 꼭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이 하나 둘 정도는 있었다.

그리고 드럭 시절부터 펑크 패션을 해온 듯 머리는 모히칸으로 꾸미고 가죽 잠바에는 쇠로 된 징과 원뿔을 촘촘히 박아 넣었으며 바지는 스키니진에 쇠사슬을 늘어뜨린 모습으로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펑크족들은 공연을 보지 않고 스컹크헬 입구에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우며 위화감을 조성했다.

때문에 주변 상인들과 주민들로부터 모여 있지 말아라, 담배 피지 말아라 등의 항의를 자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펑크족의 문화 중에서는 이렇게 펑크 패션을 한 채 길거리에서 서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포함됨을 이제 와서는 알게 되었다.

당시에 공연장을 자주 가보지 않았던 사람들로서는 스컹크헬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일종의 시험이었다. 공연장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펑크족들을 헤치고 들어간다는 것이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공연장 주변에서 서성거리다가 공연이 끝나면 홍대 놀이터로 가서 술을 마시는 펑크족들은 적지 않았지만 실제로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런 사정이 반영되어서 스컹크헬은 결국 영업을 접게 된다. 하지만 2000년대 초중반 스컹크헬에서 본 공연들은 뚜렷하게 기억이 남아있을 정도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선 펑크 공연을 볼 때는 서로 몸을 부딪히거나 허공에 발길질과 주먹질을 하는 슬램, 모슁이 기본적인 문화였다. 펑크를 들으면서 추는 스캥킹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가끔 사람이 많을 때는 관객들에게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 안되는 사람들끼리 다이빙을 하면 서로서로 상대를 잡아주고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스컹크헬의 콘크리트 바닥은 차갑고 딱딱해서 그대로 떨어지면 무척 아플 만한 곳이었다. 슬램과 모슁을 하고 나면 다음날 몸 어딘가가 두들겨 맞은 듯이 아프곤 했다. 스컹크헬을 찾았던 것은 펑크라는 시끄러운 음악이 주는 해방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컹크헬에서 공연을 하는 밴드들 중에는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게 괴성을 질러대는 밴드들도 있었다. 누구나 쓰리코드만 잡을 수 있으면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펑크라고들 한다. 스컹크헬에서 연주했던 밴드들 중에는 정말로 쓰리코드만 잡을 줄 아는 게 아닌가 하는 밴드들이 많았다.

물론 여기서 시작해서 자신들만의 공연장을 세우고 활동하는 밴드도 많다. 스카썩스는 망원동에 샤프라는 공연장을 마련했고, 페이션츠는 홍대에 스틸 페이스라는 조그마한 공연장을 세냈다.

문래동의 GBN도 드럭에서 시작한 펑크 음악의 흐름이 스컹크헬을 거쳐 정착된 케이스라고 보면 된다. 드럭 자리에 있었던 스컹크헬이 사라지고, 잠시 문래동에 재개장했던 스컹크헬은 또다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현재 홍대 스컹크헬 자리에는 벤더라는 공연장이 자리잡고 있다.)

그만큼 이제 펑크는 홍대 인디의 중심이 아니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은 활동하지만 그뿐이다. 그들이 펑크 그 자체라고 말한다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겠지만 크라잉넛, 노브레인 이외에도 펑크는 있었으며 지금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동안 원종희씨는 결혼을 했고 결혼식을 하면서 성대한 공연을 열었다. 그리고 이혼을 했고, 지금은 귀여운 딸을 SNS에 올리곤 한다.

펑크족들은 사라졌고 대신 빅뱅이나 2NE1의 낡은 패션 중 하나로 펑크 패션이 편입되어 버렸다. 빅뱅이 했던 모히칸 머리나 징 박힌 가죽잠바로 기억될 뿐 드럭과 스컹크헬의 펑크족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제 드물다.

물론 펑크 밴드는 찾으면 있다. 하지만 예전의 펑크와는 결이 달라졌다. 그라인드코어와 같은 극단적으로 짧고 단말마 같은 굉음을 내는 음악이 세를 이루기도 했다.

펑크 문화가 사라진 배경에는 그 중심에 있어야 할 펑크 공연장이 사라진 현실이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드럭의 주인이 세웠던 DGBD도 폐업했다. 이제 펑크는 홍대 앞에서 말살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문래동에서, 망원동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펑크 음악을 듣는다.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음악이 달라지고 공연장이 사라졌다. 한국의 음악 지형은 공연장을 중심으로 변화가 극심하다. 새로운 공연장이 생기면 새로운 음악 장르가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공연장이 사라지면, 그곳을 아지트로 삼았던 음악인들은 제자리를 잃고 대중들에게 묻혀져 버린다. 스컹크헬과 같은 사라진 공연장을 다시 돌아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스컹크헬

사진 출처 : 언스플래쉬,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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