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게 듣는 음악엔 소름 돋는 경험이 스며들 수 없다 –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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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얕게 듣는 음악엔 소름 돋는 경험이 스며들 수 없다

DATE. 2021.04.09.
오직 오디오와 소리만을 위한 공간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자.

“주변 모든 것들이 사라져. 그리고 無의 공간에서 음악만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떨어지며 소리를 내는 보컬의 입, 타건 세기를 느낄 수 있는 피아노 건반의 사각거림, 부서지며 스틱에 닿는 드럼의 심벌 소리가 들려와. 내 앞의 검은 공간에서 무대가 생겨나. 그리고 음악이 고조되면 소리의 폭죽이 터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지.”

아쉽게도 이런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 일생 동안 ‘오디오’라고 하는 제품을 구매해보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하니까. 개인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즐거움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사실 ‘쾌락’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강한 감정이 들어찰 때도 있거든.

현대인은 지하철에서 가장 많은 음악을 듣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에어팟으로, 카페 안에서 들리는 BGM으로, TV에서 듣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사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미 음악을 듣고 있지.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려는 ‘음악 듣기’와는 다른 방식이야.

단지 음정과 가사를 들으며 음악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담고 있는 모든 것들을 집중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음악을 더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방법, 지금부터 이야기할게.

KEF LS50 스피커. 정말 유명한 스피커야. 나도 사용했었지.

 

음악에도 듣는 방법이 있다

음악을 듣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어? 우리는 따로 음악의 무엇을 들어야 할지 고민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음악을 듣는 방법이 있어. 누구는 가사를 듣고, 누구는 멜로디를 듣지. 또 어떤 사람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은 악기의 소리를 좋아해.

이렇게 우리는 모두 음악을 듣지만, 그 방법은 모두 달라. 취향도 다르지. 앞으로 내가 이야기할 음악을 듣는 방법은 강요나 강의가 아니야. 이렇게 하면 음악을 듣는 또 다른 즐거움을 알 수도 있다는 제안이야.

공간감? 스테이지?

가운데에는 보컬이 노래를 하고 좌측에는 기타가, 우측에는 베이스가 연주를 하고 있지. 가장 왼쪽 구석에는 피아노 소리가 나고 뒤쪽에서는 드럼의 소리가 들려. 앞서 말한 것처럼 예쁘게 셋업이 된 스테레오 오디오를 통해서는 공간감을 느낄 수 있어. 넓게 놓인 두 개의 스피커 사이에서 무대가 펼쳐져.

눈을 감고 이런 무대를 즐기는 것은 간편하게 음악을 소모하는 환경에서는 즐길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야. 악기와 보컬 각 요소요소를 하나하나 즐길 수 있지. 제각기 연주하는 기타와 베이스 소리를 따로 듣다 보면 어느새 음악에 몰입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어.

‘스윗스폿’을 만드는 설정법. 좌 우 스피커의 소리가 균등하게 들리고 상이 잘 잡힌다고 해.

결국 어느 정도 전통적인 오디오 형태를 띨 수밖에 없지.

 

영상처럼, 소리가 공간에 맺히기도 해

오디오 수입사에서 일했던 때 얘기야. 아침마다 독일의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을 테스트했어. 테스트 곡은 아델의 <Hello>.

스피커의 위치와 거리, 토인(Toe-in)이 잘 셋업 된 환경. 음악이 시작하고 아델이 입을 열면, 마치 그 모양이 느껴지는 것처럼 공간에 아델의 입모양이 느껴져. 입술을 오므렸다가 떼며 나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

허풍이라고? 내가 경험했던 일이야. 3억을 호가하는 하이엔드 시스템이었지만 말이야. 한 점에서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와 악기의 소리. 이 역시도 우리가 쉽게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음악을 듣는 방법 중 하나야. 고가의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공간과 오디오의 셋업 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어.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스트링을 때리게 되고, 그것이 떨리며 소리가 나지.

그 소리가 고스란히 오디오로 느껴진다면 어떨까

 

소리가 가진 결, 질감을 느껴봐

오디오에 빠진 사람들이 자꾸만 오디오를 바꾸고, 컴포넌트를 바꿔 나가는 이유가 있어. 같은 음악을 듣더라도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갈수록 듣지 못하던 소리가 들려.

2018년, 오디오쇼에서 요요마의 solo 앨범을 들었을 때, 첼로가 이렇게 깊은 울림을 지닌 악기라는 걸 깨닫게 됐어. 활이 굵은 줄을 긁을 때 느껴지던 거칠면서도 깊은 질감과 울림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있어.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고 풍부하면서도 샐쭉한 바이올린 소리에 빠진 적도 있어. 비발디의 사계를 재해석한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사계 앨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이올린 앨범이야. 몰입해서 들으면 각 계절 속에 있는 듯 바이올린 소리의 매력에 홀려버리게 돼.

레코딩 스튜디오. 우리가 듣는 음악은 이렇게 멋진 작업실에서 대부분 탄생해.

 

모든 것은 그 근원이 중요하듯

스피커, 앰프, DAC, 소스 기기. 오디오 시스템에는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있어. 모든 구성요소들은 우리가 듣는 소리에 영향을 미쳐. 하지만 우린 음악 감상의 맨 처음부터 신경 쓸 필요가 있어. 맞아 음원이야.

우리가 재생하는 음원은 대부분 디지털 음원이야. 대부분 멜론 등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고, 오디오 마니아의 경우 전용 스트리머나 재생용 PC를 만들어 고음질 음원을 모으기도 하지. 하지만 그런 수치적 품질을 넘어서서, 녹음이 잘 되어있는 음원, 앨범이 존재해.

같은 수치의 품질임에도 더 깊은 소리가 나고, 악기들이 더 분리되어 들리고, 소리가 선명한 앨범이 있어. 앞서서 이야기한 음악적 즐거움이 더 잘 담겨있는 녹음 명반들을 들을 찾아들어보는 것. 이 역시도 오디오를 즐기는 하나의 재미가 될 수도 있지.

하이엔드 오디오의 끝은 공간 구축이지. 돈 이즈 뭔들.

 

오늘날 ‘음악을 듣는다’는 의미는 과거와 많이 다른 것 같아. 이어폰이 나오고, 블루투스 스피커가 나오고, 무선 이어폰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음악을 더욱 쉽고 간단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지. 지하철, 자동차, 침대, 운동 중에도 우리는 음악을 듣고 있어.

지난 몇십 년 동안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생겨났고 우린 편의대로 선택해 사용하고 있지. 서비스가 제안하는 음악을 듣고, Top 100 선정 곡들을 듣지. 더 이상 어떤 음악을 들을지 고심하지 않아도 되고 힘겹게 정보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돼.

우리는 더욱더 얕게 음악을 듣고, 얕게 음악에 몰입하고, 얕게 음악을 탐하게 되었지. 과거 전축 앞에 진득하니 앉아 CD를 넣고 LP를 올리던 때와는 다르게 더욱 가볍게 음악과 서게 된 거야.

그러면서 우리는 음악이 주는 많은 즐거움들을 잊고 살고 있어. 음악 안에 담긴 디테일과 질감과 즐거움을 100% 즐기지 못하고 흘려보내지. 하지만 다시 한번 오디오와 마주하고 앉는다면, 더 음악에만 몰입한다면, 그 어떤 방법보다도 머리와 마음을 리프레시해주는 음악의 마법을 느낄 수 있을 거야. by 벨레 매거진

에단 한마디 : 많은 이들이 이 즐거움을 느껴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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