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씬기행] 나 완전히 새 됐어 –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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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서울씬기행] 나 완전히 새 됐어

DATE. 2021.04.30.

그럼에도 사회의 발전은 이런 종류의 싸움을 통해 성숙해져 나간다고 할 수 있다. 싸이가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건물을 산 것, 그 자체로는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피해자가 생겨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떤 사회에서도 정상적인 상행위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이미지는 본문 내용과 관계 없음

테이크아웃드로잉

분위기 좋은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본래 경리단길과 한남동 2곳에 나뉘어져 있었다. 그 중 한남동에 있던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사라진 데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키워드가 큰 역할을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지역이 개발되어 땅값이 오른 나머지 기존에 있던 주민들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는 상황을 가리킨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개념은 외국에서 임대료가 저렴한 낙후된 지역에 중산층 이상의 사람이 몰려서 기존 원주민이 쫓겨나는 상황을 가리킨다.

한국에서는 임대료 상승 때문에 혹은 재개발, 재건축 이슈 때문에 가게가 오래 영업하지 못하고 기존의 자리를 빼앗기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일컫고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사례는 언론에 여러 번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다.

부산 일보에 따르면 2012년 2월 유명 가수 싸이가 한남동에 위치한 건물을 매입했다. 이 건물에 세들어 있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이전 건물주와의 소송 끝에 2013년 12월 31일까지 건물에서 나가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이후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퇴거를 거부하고 싸이 측에서는 강제 집행을 시도하며 분쟁이 일어났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어째서 소송에서 결판이 난 사항인데도 퇴거를 거부했던 걸까.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하게 흘러간다. 2010년 4월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첫 임대 계약 당시 임차인이 원한다면 매년 계약이 가능하다라는 조건에 동의한다. 이후 건물이 주류업체로 팔리고 다시 싸이로 건물주가 바뀌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싸이가 새롭게 들어와 프랜차이즈 커피 집을 차리려고 한다는 점을 들어 이전의 조정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법적인 문제에 따른다면 테이크아웃드로잉이 불리한 것은 뻔한 사실처럼 보였다. 하지만 건물주가 싸이라는 점이 이 분쟁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끼쳤다. 언론은 싸이가 매입한 건물에서 재수없게 악독한 임차인을 만나 을질을 당한다고 보도했다가 곧 다른 언론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이 가진 문화공간으로서의 가치를 들이밀며 공공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리반 사태 이후 서울 전역을 휩쓸던 임대차 계약 분쟁의 새로운 전장이 생겨난 것이다. 그것도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싸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여러모로 언론과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구도였다. 여기서는 싸이를 악마화하는 것도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선한 임차인으로 둔갑시키는 것도 지양하고자 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한 판결을 내릴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법적인 문제만을 따져봤을 때 싸이쪽이 유리하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임대인이 법적으로 유리한 건 모든 임대차 계약 분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애초에 법 조항을 들이민다면 사람이 다치든 말든 강제 집행을 해야만 하는 건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강제집행이 이루어졌다. 강제집행 과정에서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의 상인들이 수갑이 채워져 연행되기도 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어떤 공간이길래 이토록 저항이 심했던 걸까.

허핑턴 포스트를 참조하자면 테이크아웃드로잉은 현대미술가인 최소연씨가 시작한 프로젝트다. 두달간 아티스트에게 카페 공간 전부를 작업실로 제공하고 작가는 카페를 창작물로 채운다. 덕분에 커피를 마시러 이 카페에 들르는 사람들은 전시를 관람하는 2중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곳에서 손님들에게 대접한 음료는 입주 작가의 주제를 재해석한 메뉴로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만 맛볼 수 있는 오리지널이 많았다.

또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소식을 자체 신문을 통해 알리기도 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2006년 삼성동에서 시작했다가 성북동에서 다시 한남동과 이태원으로 나뉘게 된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단순한 커피집이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이 작업하는 공간이면서 손님들과 지역 사회의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은 이 카페를 두고 ‘한국 예술계의 기적’이라며 10년간 자가발전하고 있는 유일한 미술관이라고 말했다.

분쟁 과정에서 싸이도 이미지 타격을 당했지만 테이크아웃드로잉에 연대한 예술인들은 직접적으로 법적 문제에 휘말렸다. 미술작가 신제현씨는 강제 집행 현장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다가 초상권 침해로 소송을 당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권준호씨는 강재 집행을 막다가 카페 운영진이 병원에 실려간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렸다가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했다. 권준호씨는 이후 판사에게 제출해야 할 답변서를 패러디한 ‘답변서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자신이 법적인 문제에 휘말린 상황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설치작가 신제현씨는 ‘한남스타일’이라는 전시를 통해 카페 내부 집기를 낚싯줄로 연결하는 작품을 전시했다. 강제집행이 일어날 때 카페 집기를 예술 작품이라고 주장하며 강제 철거를 막아보려는 의도가 섞여 있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 연대한 사람들이 예술로만 저항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추석 아침부터 싸이의 집앞에 몰려가 시위를 했다. 이후 싸이가 “이대로 다 포기하고 싶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정말 싸이는 악질 임차인들에게 걸려 듣도보도 못한 곤욕을 치렀던 것일까. 아니면 예술인인 싸이가 같은 예술인들에게 소송을 걸어 사태를 마무리하려고 했던 걸까. 싸이의 팬이 이 기사를 읽었다면 추석 아침부터 몰려든 시위꾼들에 대해 온갖 비난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싸이와의 싸움은 결국 재건축 시기를 연기하면서 전시와 문화적 활동을 임시로라도 보장하는 방향으로 종결됐다. 그렇다고 해서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영업 활동이 지속적으로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결국 퇴거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2년에 걸쳐 벌어졌던 임대차 분쟁이 평화로운 방향으로 마무리된 것은 다른 분쟁지역에서도 참고할만한 일이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해당 공간이 예술적인 가치를 가졌다는 점에서 다른 분쟁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예술적인 가치가 없는 일반적인 공간은 임대차 분쟁에서 져도 괜찮은 것일까. 혹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꼭 예술적인 것만 있는 것일까. 이 사례가 남긴 이야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후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상가 임대차인들의 권리가 이전보다 더욱 보호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이런 법 개정에도 한계는 있다. 명문화된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피부에 와닿는 혜택이 없다는 불만은 여전히 있다.

그럼에도 사회의 발전은 이런 종류의 싸움을 통해 성숙해져 나간다고 할 수 있다. 싸이가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건물을 산 것, 그 자체로는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피해자가 생겨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떤 사회에서도 정상적인 상행위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의 공간이 사라지면 하나의 목소리, 문화가 사라진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서울은 매일처럼 바뀌는 곳이지만 그곳을 운영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이 사람들의 삶을 보존해야 한다는 공통의 가치를 공유한다면, 앞으로도 이런 임대차 분쟁은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게 될 것이다. 그 시발점으로서 혹은 이정표로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기억해둘만하다. by 벨레 매거진

 

테이크아웃드로잉

사진 출처 –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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