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STYLE

[서울씬기행] 인디계의 종합 예능인

DATE. 2021.05.03.

서울씬은 단순히 서울에 있는 공연장, 술집과 같은 장소들만의 조합이 아니다. 그 공간을 운영하고 드나드는 사람들과 밴드, 모임, 조직이 서울씬의 뼈대를 이룬다. 이번 글에서는 서울에서 모여 활동했던 밴드와 사람들의 흔적을 추적해보려고 한다.

이랑

우스갯소리로 연예인 홍서범을 종합 예능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재주가 많다는 뜻이다. 이번에 소개할 ‘이랑’은 작가이며, 가수이고,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참고로 활동명인 이랑은 그의 본명이다.

이랑은 2012년 발매한 1집 ‘욘욘슨’을 통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인디 가수로서의 활동은 두리반 칼국수 집 분쟁을 시작으로 가끔은 밴드로 또 가끔은 솔로로 활발한 공연을 펼쳐왔다. 음악계의 평은 이랑이 아마츄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녀의 음반을 들어보면 간단한 코드 진행에 쉬운 멜로디가 귀에 착 감긴다. 단순히 아마츄어의 작품만으로 폄하하기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강하다.

다음은 1집 수록곡 ‘프로펠러’의 뮤직비디오다.

이랑이 직접 연출하고 그녀의 친구들이 도와준 이 작품에서 현대 무용과 인디 음악의 만남이라는 신선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랑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출신이다. 한예종이라는 학교는 두리반 싸움 이후 한국 인디계에서 특이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 학교를 나온 인디 가수들이 자립음악생산조합과 공명해 활동을 해나갔고, 학내에 ‘대공분실’이라는 공연장을 설치하기도 했다. 일전에 소개한 무키무키만만수도 한예종 출신이었다.

물론 한예종이라는 학교를 나온다고 해서 전부 다 인디 가수가 된다거나하는 건 아니다. 한예종이란 학교의 특성이 인디 가수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두리반 싸움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을 거쳐 이들이 주목을 받은 데에는 학교에서 쌓은 실력과 창의성, 예술가로서의 자의식 같은 것들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이랑은 독립 영화감독으로서의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친구들을 캐스팅해서 찍은 ‘유도리’, ‘변해야 한다’, ‘주 예수와 함께’ 같은 것들이 그 흔적들이다. 이후 이랑은 웹드라마 ‘출출한 여자’, 온스타일의 웹드라마 ‘오 반지하 여신들이여’를 찍기도 했다. ‘오 반지하 여신들’에는 하연수나 걸스데이의 소진과 같은 유명 연예인이 주역으로 참여했다.

이랑은 만화가, 작가로서의 활동도 꾸준하다. 2013년 유어마인드를 통해 ‘이랑 네 컷 만화’를 펴낸 이후 ‘내가 30대가 됐다’, ‘신의 놀이’와 같은 작품을 냈다. 에세이도 출판했다. 출판사 달에서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를, 위즈덤하우스에서 ‘오리 이름 정하기’를, 창비에서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를 출판했다.

최근에는 주간 문학동네란 온라인 플랫폼에서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과 함께 ‘괄호[과:로]가 많은 편지’란 서간문을 연재했다.

이랑은 페미니스트로서 각성한 이후에 남성 중심적인 영화판에서는 더 이상 활동할 수 없다고 자신의 저서나 트위터에서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구체적인 사연으로는 여성적 관점에서의 포르노 기획을 들고 와서 감독을 맡아달라고 했는데, 실은 그 기획이 다분히 남성 중심적인 작품이었다는 비화가 있다.

1집 활동 때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창작활동을 했기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곡에서 “누가 나보고 예쁘다고 하면 / 난 그 말만 듣고 그럼 나랑 사귀자고 했어 / 그런 식으로 만난 남자만 해도 벌써 / 한 명 두 명 세명 네 명 다섯 명 /여섯 명 일곱 명 여덟 명 “과 같은 가사를 썼다. 이후 이랑은 이때의 창작활동을 후회하면서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르지 못하겠다고 여러 번 말하기도 했다.

이랑의 2집 ‘신의 놀이’의 수록곡 ‘신의 놀이’가 2017년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했다. 이때 시상식 무대에 올라 소감을 밝히면서 이랑은 즉석에서 자신의 가난한 자금사정을 밝히면서 트로피를 50만 원에 경매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것이 화제가 되어 대중들에게 이랑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기회가 됐다. 당시 퍼포먼스는 실제로 경매를 한 것이 아니라 관계자와 이야기를 맞춘 후에 꾸며낸 것이다.

이랑은 이후 보험설계사로 취직을 할 만큼 예술가와 돈의 관계에 대해서 활발하게 발언하고 관련된 행동을 실천하는 편이다. 이랑의 말대로라면 ‘아주 잘 나온 사진만 남겨 놓고 굶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데뷔 초기에 각종 패션 잡지로부터 인터뷰와 화보 촬영 요청을 받은 이랑은 페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의 문제점을 자각했다고 한다. 그 이후 이랑은 인터뷰당 소정의 페이를 정해두고 이를 인터뷰어에게 요청하고 있다.

이랑의 문제의식은 개인의 것이긴 하지만 자립음악생산조합에서 라이브 클럽 페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과 결을 같이 한다. 라이브 클럽에 서는 뮤지션들은 대개 페이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이에 대해 일한 만큼의 정당한 페이는 지불되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는 음악가로서 자립하기 위한 물적 기반을 세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이랑이 예술가이면서도 돈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예술가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인디 뮤지션들도 엄연한 생활인이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돈은 결국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예술가연하는 고고한 자세로 무시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이랑은 이후 경향신문에 기고하며 3집 앨범을 준비하는 등 여전히 건재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일본 공연을 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녀의 삶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삶의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곳에서 솟아날 여지가 생기는 법이다.

이랑 이전에도 인디 가수들이 에세이집을 출판한다든가 책방을 연다든가 하는 부수적인 작업을 하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이랑만큼 각각의 분야에서 일정 정도의 전문성을 확보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확고하게 지켜나가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그녀만큼 자신만의 삶을 지켜내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사람도 드물다.

그녀의 앞으로의 삶이 그녀에게 시련을 내릴지 축복을 내릴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활동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삶을 지속해나갈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그녀가 준비하고 있는 3집에, 또 언젠가는 펴낼 책과 찍을 영상물에 좋은 일이 있기만을 빈다. by 벨레 매거진

 

이랑

출처 – 언스플래시, 이랑 1집 표지, 신의 놀이 표지

 

[지난 콘텐츠]

[서울씬기행] 나 완전히 새 됐어

[서울씬기행] 만약 서울이 불바다가 되었다면

타인의 취향을 엿보는 공간, <벨레 매거진>


COMMENT

[서울씬기행] 인디씬을꼭 살려야 할까? - 벨레 매거진 에 답글 남기기 CANCEL

Welle 로그인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