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씬기행] 라이즈 오브 민중 엔터테이너 –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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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서울씬기행] 라이즈 오브 민중 엔터테이너

DATE. 2021.05.20.

서울씬은 단순히 서울에 있는 공연장, 술집과 같은 장소들만의 조합이 아니다. 그 공간을 운영하고 드나드는 사람들과 밴드, 모임, 조직이 서울씬의 뼈대를 이룬다. 이번 글에서는 서울에서 모여 활동했던 밴드와 사람들의 흔적을 추적해보려고 한다.

한받

활동명 한받, 본명 한진식은 1974년 대구 출생의 인디 음악인이다. 그는 통기타를 들고 연주할 때는 ‘아마츄어 증폭기’라는 활동명을 쓰고, 전자음악을 할 때는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활동명을 쓴다. 그는 아이 아빠이면서 자립음악인이고 공연할 때마다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을 몰고 다닌다.

한받은 본래 영화를 좋아했다. 한예종 영상원에서 편집 조교로 일하기도 했다. 스스로 찍은 단편 영화가 몇 편 있기는 하지만 극장에 내걸린 것은 없다. 한받은 스스로를 ‘민중 엔터테이너’라고 칭하며 춤을 추고 통기타를 연주하며 산다.

민중 엔터테이너는 운동권 집회에서 흔히 보이는 민중 가수와는 어떻게 다를까.

한 인터뷰에서 그는 “민중가요는 보통 진중하고, 가라앉아 있고, 암울한 분위기가 많다. 그런데 촛불 시위를 겪으면서 집회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상황은 열악하고 절망적이지만 주눅 들지 않고 흥겹게 즐기면서 싸울 수 있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본다. 민중 엔터테이너는 그에 맞게끔 변화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부터 홍대 앞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인디 레이블을 통해 앨범을 발매하고 레이디피시팝홀이라는 공연장에서 매니저로 활동한다. 2009년 즈음부터 한받은 스스로를 자립음악가로 칭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벌어졌던 두리반 칼국수집 철거 농성에 참여하면서 한받은 다른 음악가들과 교류를 하면서 ‘자립음악생산조합’이란 아이디어를 내기에 이른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의 발기인 대회 당시 불미스러운 논란에 휩싸이는 바람에 한받은 실제 조합의 활동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공연에는 자주 참여하면서 일종의 정신적 지주로서 자리매김했다.

한받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구루부 구루마라는 이름을 붙인 리어카를 끌고 다닌다.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식 노점 형태로 자신의 음악을 판매한다는 아이디어였다. 그가 꾸준하게 주장했던 자립음악가로서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활동 중 하나였는데 홍대 앞을 떠나 여러 곳에서 행진을 이끄는 장치로서 활용이 됐다.

이미지는 본문 내용과 관계 없음

두리반 칼국수집 싸움을 후원하기 위해 뉴타운컬쳐파티 51+ 페스티벌을 공동기획하는 등 철거 관련 농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는 테이크아웃드로잉 분쟁 때도 구루부 구루마를 끌고 나와 이태원을 누볐다.

그는 아현역에 있었던 아현포차의 행정 대집행 후 아현 뉴타운 아파트 단지 주위를 돌며 행진하기도 했고,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 때는 노동당의 옵티머스 트럭 위에 올라가 탄핵 축하 테크노 퍼레이드를 이끌기도 했다.

한받은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이 선동과 음악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뮤지션이다.

카페 분더바 분쟁 때 야마가타 트윅스터로서 공연했던 ‘돈만 아는 저질’의 영상이다. 기묘한 옷을 입고 랩인지 타령인지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저질스러운 춤을 추는 것이 야마가타 트윅스터일 때 그의 모습이다.

공연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면 갑자기 공연장소를 벗어나 도로에 난입하는 것이 그의 꾸준한 레퍼토리 중 하나다. 그의 뒤를 따라서 관객들이 공연장을 벗어나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은 언제봐도 웃기고 재미있다.

저질스러운 춤을 추는 야마가타 트윅스터로서의 자아는 박해받기 쉽다. 그의 공연 스타일은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여서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 개막 공연에서는 관계자에 의해 공연 도중 끌려나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후에 영화제로부터 사과를 받기는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로 인해 한받 개인이 겪어야 했던 수모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렇게 웃지 못할 일을 벌이는 한받, 의외로 그를 사랑해주는 팬이 있어서 치과의사인 팬이 부러진 앞니를 임플란트 시술로 고쳐주었다고 한다. 작가이자 영화감독, 뮤지션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이랑도 자신을 ‘한받빠’라고 부를 정도로 그의 팬이다. [서울씬기행] 인디계의 종합 예능인, 이랑

한받은 현재 아내와 함께 만리동에 위치한 만유인력이라는 24시간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월세가 나오는 영업장은 아니지만 예술인복지재단의 파견예술사업에 기업으로 참여하여 힘을 얻는 등 다수의 도움으로 근근히 영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스스로 서술한 ‘탐욕소년 표류기’와 자립음악을 연구하는 ‘동아시아 자립음악 연구’라는 책을 썼다. 탐욕소년 표류기에는 그의 성장과정과 홍대 앞에서의 활동에 대해 자세하게 적혀 있다.

한받은 관계자들끼리 있을 때는 흥미롭고 유쾌한 인물이지만 본래 성격은 낯을 심하게 가리고 과묵하다고 한다. 때문에 공연을 할 때면 그의 2번째 인격이 나타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박수를 받고 웃음을 이끌어내지만 낯선 관객들 앞에서는 끌려나가는 수모를 겪는다. 그의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이 한받의 정체인지도 모른다.

그의 공연 중에 짜파게티를 끓이는 레퍼토리가 있다. 실제로 음식을 조리해가면서 연주를 하다가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과 함께 짜파게티를 나눠 먹는다.

그의 공연은 행진과 나눔, 시위와 투쟁을 키워드로 이루어져 있다. 발차기를 좋아하는 그는 연신 발차기를 해가며 공연을 이끌어간다. 그는 2013년에 인디 듀오 위댄스와 함께 도쿄와 오사카를 도는 투어를 가졌다. 또한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지에서도 공연을 했다. 이곳에서도 분명히 이단옆차기를 어설프게 날렸으리라.

한받은 시위와 집회에 최적화된 뮤지션이다. 혹시라도 길거리에서 이상한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그를 발견하게 된다면 유심히 살펴보자. 그의 춤사위와 노래 속에 한국 인디 씬이 숨어있다. 그는 서울의 민중 엔터테이너다. by 벨레 매거진

 

한받

사진 출처 –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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