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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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DATE. 2021.05.25.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Prologue_>

‘게스트하우스를 그 먼 나라에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걱정보다 소리 소문 없이 콩팥 한쪽을 떼이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앞섰다.

 

#1. 더 늦기 전에

눈뜨면 출근하고 퇴근하면 녹초가 되어 잠든다. 이런 일상이 너무 답답하고 싫은데 새로운 일을 할 계기도 없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 물질적으로 불편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알 수 없는 무기력감이 나를 가라 앉힌다.

대부분이 그렇듯 특별한 여행 계기는 없다. 일단 비행기 티켓을 질러놓고 보면 어떻게든 가게 된다. 큰 기대감 없이 다녀온 친구들과의 일주일 유럽 배낭여행이 앨리스의 인생을 180도 뒤집어 놓았다.

행복은 아득히 먼 이곳에 있던 걸까. 밥 세 끼 잘 먹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간다는 게 대단한 일은 아닌데 그냥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뾰족뾰족하게 날 서 있던 몸과 마음을 둥글둥글하게 녹여 주었다. 재미없고 기계적으로 반복되던 일상이 새로워지는 마법.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늘었다.. 본래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좋아했을까? 호기심이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 가능한 먼 곳에서 인생에 한 번쯤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원하는 대로 살아보자. 유럽 여행을 계획했고 그와 동시에 퇴사했다.]

 

#2. “둘이 무슨 사이예요?”

… 우리?

우리는 에스프레소같이 적지만, 여운이 길고 진한 사이. 다시 말하자면 짧고 굵은 사이다.

절대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우리가 정신 차리고 보니 2019년, 스페인에 함께 와있다.

 

“둘이 무슨 사이예요?”

“그냥 동네에서 술 먹다가 만난 사이예요, 비즈니스 파트너~”

 

사실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데 게스트들의 반복되는 질문에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는 2017년 동네 친구들과 한신포차에서 처음 만났다. 첫 기억은 이것 말고는 없다. 메이에게 앨리스는 누가 봐도 날카롭고 센 언니 그 자체였고, 그저 스쳐 지나갈 사람이라 생각했다.

반대로 앨리스에게 메이는 제 3자도 아니고 6자 7자쯤 되는 것 같다. 횡단보도에서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다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그녀에게 메이도 딱 그 정도의 흐릿한 존재였다.

친구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툭 던진 밥이나 한번 먹자는 형식적인 대화는 어색한 둘만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메뉴는 닭 칼국수. 아마 코로 먹었던 것 같다. 식사가 끝난 후 지나가다 오래된 LP 펍을 발견한다.

메이 : 저-기 어때?

앨리스 : 너-무 좋아!

 

우연히 들어간 LP 바에서 알고 보니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닮았다. 같이 노니까 재미있다! 어색한 분위기는커녕 영혼의 짝을 만난 것처럼 흥분된다.

그러고 보니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이상하리만큼 매번 옆자리에 나란히 찍힌 우리 사진을 보면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이 천천히 서로에게 스며들게 되었던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았던 이상형을 우연히 만나듯, 어쩌다 얻어걸린 잘 맞는 인생 친구라 대답하겠다.

 

#3. 그래, 스페인으로 가자

당시 메이는 미술관 큐레이터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적은 보수로 속앓이 중이었다. 이직을 고민하고 있던 시기에 앨리스에게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고민 많은 메이는 고민 없이 한쪽 귀로 흘려버린다. 뜬구름 잡는 소리다. 한국에서도 못하는 것을 말도 잘 안 통하는 해외에서 하자고? 또 월급쟁이에게 자영업자의 길은 너무 큰 도박이었다. 그저 술김에 한말이겠지 헛웃음으로 넘긴다.

두 달이 지나도 계속되는 앨리스의 제안에. ‘아, 큰일 났다. 이 언니 진심인가 봐.’ 농담처럼 가볍게 받아쳤던 제안을 그제야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아니 근데 왜 나지? 우리가 같이할 수 있을 만큼 찐-한 사인가? 뭐야 이거 사기 아니야?’

게스트하우스를 그 먼 나라에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걱정보다 소리 소문 없이 콩팥 한쪽을 떼이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앞섰다.

[메이&앨리스]

별의별 고민을 다하는 메이와는 달리 앨리스는 확신에 차있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 일을 뚝심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신의 일을 사랑한 적이 있을까? 앨리스의 눈에는 메이의 모습이 멋지게 느껴졌다. 이만한 마음의 열정이 있는 놈이라면 어디에서든 망하지는 않겠지. 아니 무조건 잘 돼.

우리는 스페인으로 떠났고, 다행히 아직 메이의 콩팥은 두 쪽이다. by 벨레 매거진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은 계속됩니다.

타인의 취향을 엿보는 공간,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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