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씬기행] 생율밤이 풍년이로구나! –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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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서울씬기행] 생율밤이 풍년이로구나!

DATE. 2021.05.28.

서울씬은 단순히 서울에 있는 공연장, 술집과 같은 장소들만의 조합이 아니다. 그 공간을 운영하고 드나드는 사람들과 밴드, 모임, 조직이 서울씬의 뼈대를 이룬다. 이번 글에서는 서울에서 모여 활동했던 밴드와 사람들의 흔적을 추적해보려고 한다.

요한 일렉트릭 바흐

J.E.B(요한 일렉트릭 바흐)는 본명 조선구로 1989년생 일렉트로닉 음악 아티스트다. 그의 블로그에는 현재는 삭제되었지만 다음과 같은 소개 문구가 있었다.

“요한 일렉트릭 바흐 선생님께서는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우유에 콘푸로스트를 타드시며 트위터를 구경하던 중 난생처음으로 휴대폰에 걸려온 전화 벨소리에 깜짝 놀라 신디사이저에 우유를 쏟는 바람에 감전되어 돌아가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전기는 국산이지만 원료는 수입입니다’라는 말씀을 강조하셨고 요한 일렉트릭 바흐 재단에서는 이 깊은 뜻을 기려 도로 곳곳의 전기시설물에 선생님의 말씀을 새겨 놓았습니다.

생전에 간장게장을 무척이나 좋아하시던 선생님께서는 자기가 죽으면 장례 지낼 때 땅에 묻거나 화장하지 말고 꼭 간장게장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7월부터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모든 간장게장에는 요한 일렉트릭 바흐 선생님의 유골이 0.3% 함유되어 있습니다.

요한 일렉트릭 바흐 재단에서는 선생님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하드디스크에서 약 80기가의 야동과 수십여 곡의 음원을 발견하였습니다. 앞으로 선생님 얼굴이 그리워질 때마다 미발표 음원들을 리-마스터하여 차차 발매할 계획이며 저작권 수익은 제 것입니다.”

요한 일렉트릭 바흐

다소 황당한 소개 문구를 내걸고 있었던 J.E.B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의 공연장을 운영했던 박정근씨와 관련이 있다. 박정근씨가 고등학교 때 취미생활로 만들었던 레이블 비싼트로피 소속이었다. 현재는 자신의 레이블을 새로 세워 별도로 활동하고 있다.

이전에 소개했던 밤섬해적단, 무키무키만만수이랑처럼 J.E.B는 사회참여적인 활동을 한 뮤지션은 아니다. 하지만 자립음악생산조합 계열 인디 가수들이 활발하게 공연했던 로라이즈나 꽃땅에서 공연을 열며 개인적으로 교류를 계속해온 것으로 봐서 범자립 계열 뮤지션이라고 칭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트위터에서 박정근과 친구들이 국가보안법을 농담거리로 삼아서 놀았던 것처럼, 그 ‘친구’ 중 하나인 J.E.B도 북한의 노래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를 ‘장로님 에쿠스 타신다’로 패러디하기도 했다. 이 곡은 2012년 KBS의 탑밴드 2라는 프로그램의 예선이 제출되어 조회수 1만 뷰를 돌파했다.

J.E.B는 리믹스 곡이나 매쉬업(여러 다른 곡을 마치 하나의 곡처럼 이어 붙이는 기법) 작품들을 만들며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 유쾌한 놀이를 계속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인디 수준을 뛰어넘는 숫자의 리스너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2018년 10월 그가 유튜브에 올린 ‘전국 Handclap 자랑’이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키며 광풍이 된 것이다. 이 곡을 계기로 J.E.B는 상업적인 공연이나 페스티벌에 초대되기 시작한다. 현재 ‘전국 Handclap 자랑’은 조회수 1000만 회를 돌파했다. 미국의 혼성 팝 그룹인 ‘Fitz and the Tantrums’의 ‘Handclap’과 송해가 전국 노래자랑을 시작할 때의 멘트를 메쉬업한 이 곡은 인터넷의 성지가 되어버렸다.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 J.E.B는 유튜브에 올렸던 폭력적이고 잔인한 영상과 블로그에 올렸던 장난스러운 소개 멘트를 지우는 등 진지한 뮤지션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실제로 그는 음악을 틀다가 실수하면 밤에 잠도 안 오는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J.E.B를 본격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준 곡은 ‘전국 Handclap 자랑’이지만 아이돌 팬들에게 익숙해진 곡은 ‘생율Bomb’이다.

생율Bomb은 남자 아이돌 그룹 NCT 127의 ‘Cherry Bomb’과 빅뱅의 멤버 탑의 ‘Doom Da Da’, 민요 ‘군밤타령’을 절묘하게 섞은 곡이다.

현철의 ‘사랑의 이름표’, NCT 127의 ‘무한적아’, 드레이크의 ‘Hotline Bling’을 섞은 無限的李榮杓 (무한적이영표; Leemitless)도 필청의 곡이다.

J.E.B는 여러 아이돌 가수의 음악을 매쉬업의 재료로 삼는다. 그중에서도 NCT 127은 J.E.B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아이돌이다. 혹시 그는 NCT 127의 팬클럽인 엔시티즌일까? 그건 아니다.

그가 NCT 127에 대해 애정을 보이는 것에 대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NCT 127은 꽉 차있는 케이팝이 아니다. 가지고 놀기 좋은 곡이라서 많이 작업에 넣게 된 편이다.”라고 말했다.

J.E.B, 본명 조선구씨는 본래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음악 활동은 펑크록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시작했고 신스팝 밴드 SSS에서 신시사이저와 기타 연주를 맡았다. 그가 일렉트로닉 음악에 손을 댄 것은 다른 밴드 멤버들이 직장을 잡으며 음악 활동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음악을 독학으로 배웠고, DJ를 하는 방법도 유튜브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다. 한동안 J.E.B는 친구들과 같이 웃기 위해서 기묘한 앨범 설명을 곁들인 매쉬업 곡으로 이루어진 음반을 내고 각종 콘테스트에 곡을 제출했다. 영기획이 주최한 무키무키만만수 리믹스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안드로메다’는 원곡의 기묘한 감성에 J.E.B의 인디스럽고 유쾌한 감각이 더해져 더욱 종잡을 수 없는 곡이 되었다.

서태지가 Quiet Night를 발매했을 때 열렸던 크리스말로윈 리믹스 대회에 출전해 특별상을 수상했다.

J.E.B는 재미있게 노는 와중에 전국구급으로 성장한 뮤지션이다. 지난해에는 라이엇 게임즈가 만든 가상 K-POP 걸그룹인 K/DA의 음악을 리믹스하기도 했다. 심지어 케이팝 프로듀싱 제안도 몇 번 들어왔지만 기회가 안돼서 어그러졌다고 한다.

그는 재미있게 노는 것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사람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을 소비하지 않고도 유튜브라는 매체를 적절히 이용해 오프라인에서도 먹히는 강자가 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와 함께 ‘놀았던’ 뮤지션 중에서 가장 유명하게 된 케이스가 되었다.

지난해에는 맥주 회사의 프로모션이면서 슈퍼볼 애프터 파티인 BUDX 마이애미에 국내 뮤지션으로는 최초로 초대되기도 했다. 당시 버드와이저의 후원으로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의 한 호텔에 전 세계 2백여 명의 크리에이터가 초청됐다. 건즈앤로지스, 블랙 아이드피스, 디플로가 콘서트를 열었다. 케이팝과 민요, EDM을 절묘하게 섞으며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J.E.B는 2020년의 키워드로 ‘쇼 앤 프루브’를 꼽았다.

코로나로 공연 활동이 주춤해진 요즘 그는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 디제잉을 송출하기도 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더욱 뜨거워질 뮤지션인 J.E.B의 이름을 기억해두자. by 벨레 매거진

 

요한 일렉트릭 바흐

사진 출처 – 요한 일렉트릭 바흐 블로그, 밴드캠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Pixid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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