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뭐볼까] 어떤 회사에 다니나요? –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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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오늘뭐볼까] 어떤 회사에 다니나요?

DATE. 2021.06.21.

[웹드라마 <좋좋소>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좋소는 과연 아직도 이런 중소기업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유튜브에 달린 댓글만 봐서는 충분히 한국 사회에 현실로 존재할법한 중소기업을 다루고 있다. 우리가 다니고 있는 중소기업은 일부분이긴 해도 정승을 모두 조금씩은 닮아있다.

웹드라마 <좋좋소>는 우리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중소기업의 모습을 그려냈다. 주인공 조충범은 29세 사회초년생으로 우연히 ‘정승네트워크’라는 회사의 일원이 된다. 처음부터 근로계약서를 쓰는 문제로 삐걱거리던 ‘정승’은 조충범에게 트라우마만을 안겨주는 직장이다.

‘정승’의 사장 정필돈은 조충범이 처음 출근한 날 거하게 한번 쏜다고 큰소리를 쳐놓고서는 정작 데려가는 곳은 학생 식당인 인물이다. 안하무인에, 직원 이름을 계속 잊어버린다. 계약서를 쓰자는 조충범의 말에는 “그런 건 믿음으로 가는 거지”라고 말하는 구식 사장이다.

사장의 조카인 정정우 이사는 회사에서 특별한 일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단순히 사장의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임원 대우를 받고 있다. 사장의 지시로 조충범에게 근로계약서를 써주지만 공고에 나온 연봉보다 훨씬 낮은 금액으로 그것도 이면지에 계약서를 작성해준다. 내심 회사의 기둥 중 한 명인 이미나 대리를 좋아하고 있다.

이미나 대리는 회사의 에이스라고 불리나 사실은 아주 정직한 영어 발음을 가지고 있다. 바이어와 통화를 할 때 영어 발음이 먹히지 않자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소통하기도 하는 기이한 능력의 소유자다. 그녀는 남자 친구를 수시로 바꿔가면서 조충범을 갈궈댄다.

정승의 유일한 인격자인 이과장은 ‘좋좋소’라는 컨텐츠가 올라가고 있는 채널의 주인이자 웹드라마의 등장인물이다. 그는 조충범이 회사를 그만두기 위해 도망갈 때 그를 따라 뛰며 끝까지 법인카드를 사수하려고 한다. 본인도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별 볼 일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붙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백진상 차장은 극의 중후반에 등장하는 인물로 러시아 출장을 갔다가 복귀했다는 설정이다. 정승에서 능력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인물이다. 어딘가 비리비리해 보이는 조충범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며 수시로 괴롭힌다. 여자 직원들에게 집쩍거리기를 잘한다.

극 후반에 등장하는 이예영은 약간 나사가 빠진 듯한 신입사원이다. 조충범이 기획한 좋소개팅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위해 입사한 개발자 인턴이다. 회사 안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브이로그를 찍는다. 정정우 이사 자리에서 썩은 내가 난다며 무심하게 페브리즈를 뿌린다.

좋좋소는 과연 아직도 이런 중소기업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유튜브에 달린 댓글만 봐서는 충분히 한국 사회에 현실로 존재할법한 중소기업을 다루고 있다. 우리가 다니고 있는 중소기업은 일부분이긴 해도 정승을 모두 조금씩은 닮아있다.

회사에서 인간관계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상사, 개념 없는 후배, 연줄로 들어온 임원까지. 어떤 이는 좋좋소를 다큐멘터리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좋소라는 말이 가지는 어감을 보면 알겠지만 이 드라마는 애초에 중소기업을 희화화하려고 만들어진 웹드라마다. 그렇다고 해서 중소기업을 다니는 수많은 한국 사람들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다녀봤던 중소기업 중 이 웹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현실보다 더한 곳도 있었다. 자기가 다녔던 회사를 욕하는 것은 그 회사에 들어갈 실력밖에 안되는 자신을 욕하는 것일 수도 있다. 때문에 그런 회사들에 대한 자세한 비방은 삼가하기로 한다. 대신 우리는 웹드라마 ‘좋좋소’를 보면서 그들의 풍자에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좋좋소는 편당 조회수 백만회를 넘기는 폭발적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OTT 서비스인 왓챠는 좋좋소의 영상을 받아들여 확장판을 서비스하고 있다. 가짜 사나이만큼의 인기는 아니지만 중소기업계의 가짜사나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좋좋소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인기 비결은 뭘까? 우선 좋좋소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의 보편성에 있다. 미디어에서는 주로 대기업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경향이 있다. 드라마 주인공이 직원 5명짜리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고 설정한다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라도 있는 모양이다. 이런 중소기업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불합리한 사건들을 일반 드라마에서는 다루지 못한다. 다룬다 하더라도 극의 종류가 사회고발극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좋좋소는 코미디라는 장르를 선택해 이와 같은 함정을 피해간다. 유튜브를 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야기, 중소기업에서 인간관계에 치이고, 작은 회사의 특성에 말려들어가는 자신들의 애환을 다루기를 원하고 있다. 좋좋소는 바로 그 지점을 현명하게 지적한다.

애초에 유튜버 이과장의 채널은 ‘중낳괴’(중소기업이 낳은 괴물)라는 컨셉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컨텐츠를 다루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정체성을 웹드라마로 승화시킴과 동시에 채널 주인이 드라마 속 인물로 등장함으로써 마치 현실 속의 중소기업을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웹드라마 속 캐릭터 조형이 뛰어난 것도 인기의 비결 중 하나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어디선가 봤을 법한 인물들이다. 주인공인 조충범부터가 처음 들어간 직장을 도망치듯이 그만뒀다가 월급을 받기 위해 다시 찾아가 결국 재취업을 하게 되는 비루한 인물이다. 그는 항상 도망치기만 했다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다. 그것도 잠시, 새로 들어온 후배에게 놀림을 당하고, 회사 선배에게 괴롭힘에 가까운 꾸지람을 듣는 등 회사 생활이 영 순탄치 않다.

조충범이 평소에 자주 짓는 어색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거울 속에서 인사하는 나 자신을 만나는 기분이다. 그가 회사에서 맞닥뜨리는 다른 인물들은 어떠한가. 하나같이 기이하면서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누구도 악인은 아니지만 현실 속에서 지옥을 만들어가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조금은 게으르고 조금은 어리석다.

좋좋소는 우리가 직장에서 맞이하는 지옥도만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명절 선물은 제대로 주지 못하지만 회사를 위해 거래처에 굽신거리는 사장의 모습은 결국 정승 네트워크도 ‘사람 사는 곳’임을 말하고 있다.

좋좋소란 웹드라마는 어디까지나 코미디다. 인물은 왜곡되어 있고 사건은 뜬금없는 게 정상이다. 좋좋소를 보는 시청자는 계속 자신의 현실을 웹드라마에 투영한다. 이 인물은 우리 회사의 누구 같고, 이 사건은 저번 회사의 그때 같다고.

한국에서 근로기준법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상관 없이 철저하게 지켜진다면 좋좋소란 코미디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외국의 시트콤인 <오피스>와는 다른 결을 <좋좋소>는 가지고 있다. 오피스가 그냥 코미디라면 좋좋소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우리는 현실의 상황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이 웹드라마를 볼 수밖에 없다. 오늘도 출근을 해야 하고 출근을 하면 맞닥뜨리는 그들은 웹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가 아니다. 물론 나는 어딘가 조충범을 닮았겠지만 그와 똑같지는 않다. 이 차이가 좋좋소의 인기 비결이다. 현실에 있을 법하지만 결국 환상에 불과한 우리들의 그 ‘직장’이 좋좋소에 있다. by 벨레 매거진

 

이과장의 좋좋소

사진출처 :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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