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아시안 둘? 아니 현지인 둘 –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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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바르셀로나의 아시안 둘? 아니 현지인 둘

DATE. 2021.06.29.

 

남해사는 여자랑 동해사는 여자애 둘이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집이 생기다니.. 아무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해낼 줄은 몰랐다. 그러나, 해냈다. 좋아하는 나라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됐다.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5_>

– 앨리스 Part 3_

앨리스 #7. 멘붕, 또 멘붕

모든 일이 순조로웠던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스페인에서의 보금자리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충분한 재정보증 서류를 가져왔고,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줄 수 있는 서류는 다 챙겼다고 생각해서 큰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엄청난 착각이었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더 외국인에게 엄격했고 집을 볼 수 있는 사이트는 온통 스페인어로 도배돼 있었다. 대부분의 현지인이 영어 사용에 제약이 있다는 점을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는 온몸으로 부딪혀야 겨우 한두 개의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그마저 볼 수 있던 건물은 대부분 전기 공사가 필요한 집이었고(전구만 끼우면 나오는 형태가 아니다 전기공사를 해야 했다) 구조도 한국과는 너무 달랐다.

‘집만 계약해야 되는 게 아니네..?. 전기에 가스에 보험에 줄줄이 해야 할 게 왜 이렇게 많은 거지?’

최신식이면 평수가 너무 좁았고 평수를 늘려 보니 부분적으로 공사를 해야 하는 집이 너무 많았다.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환경에 식은땀이 주룩. 당초 집 계약 시 필요한 체크리스트가 끝도 없이 늘어났다.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궁금한 게 생겨도 속 시원히 물어볼 수 없고 할 수 있는 건 동영상 찍기, 동영상 해석하기, 경험이 많은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물어보기 이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세상엔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사소한 질문조차도 우리에겐 모험이구나.‘

한 두 집만 봐도 녹다운이 되어 쓰러지기 일수 였다.

아낄 수 있는 건 생활비뿐이라 8인실 도미토리에서 생활했다. 모든 끼니도 마트 표였다. 10유로, 만 원 남짓한 돈으로 하루를 버티며 사는 건 각오를 했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유럽.. 여행이나 와봤지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처음 보는 벌레들이 왔다 갔다 하는 주방에서 음식을 해 먹고살아야 하는 게 얼마나 세게 현타 오는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제일 마음이 힘들었던 건 집이 계약이 될지 안 될지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는 우리의 상황이었다.

‘너무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집에 돌아가게 되면 어떻게 하지’

눈 뜨고 감을 때까지 걱정만으로 가득한 날이 점점 늘었다.

메이에게 우린 무조건 다 잘 될 거라 호언장담하듯 큰소리 빵빵 쳐서 겨우 데리고 왔는데 뭘 할 때마다 생전 처음 하는 것들이라 방법도 모르겠고 네이버 지식인도 모르네?

‘괜찮아 잘할 수 있어! 다 과정이야.. 과정’

마음 고쳐먹기를 하루에 12번은 넘게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괜찮아지지 않는 날이 많다.

더는 못 참겠다. 건드리면 톡 하고 터질 것 같은 눈물이 한 바가지 쏟아질 것 같은 그런 날. 내 마음을 마치 다 들여다본 듯 메이가 잘해가고 있는 거라고 다독여 준다.

그 순간에 내가 혼자였으면 어땠을까?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무근본 자신감은 서로를 향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주는 특별한 마법인 것 같다.

컨트롤이 되지 않는 날엔 메이가 꽉 잡아주고 반대로 메이가 걱정에 초조한 날을 보내면 내가 메이를 꽉 잡는다. 절망적인 날의 리듬도 티키! 타카! 한 번씩이라 무너지지 않고 서로를 의지해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할 수 있다. 성당을 보면 기도를 하고 행운이 깃든 동상이 보이면 마음을 다해 손을 올렸다. 매일 주문을 걸었다.

 

앨리스 #8. 그라시아, 바르셀로나, 스페인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관광지와의 접근성이 좋을 것, 게스트들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치안이 좋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항을 고려하더라도 다른 매력적인 포인트가 많아서 선택하기가 참 어려웠다.

낯선 외국인을 상대로 부동산 장기 계약을 하기도 쉽지 않았는데 집의 컨디션과 최적화된 입지 안정성 등을 다양하게 고려하여 점수를 매겨야 했으니 만성 두통에 시달린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바르셀로나는 크게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느낌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선호도로만 보면 메이와 나 모두 구시가지를 더 좋아했다.

그곳은 오밀조밀한 건물 사이로 바르셀로나의 냄새가 많이 나는 재미있는 개인 상점들이 가득한 곳이다. 건물들의 페인팅도 저마다 귀엽고 좁은 창살 사이로 각기 다른 생김새의 댕댕이들이 인사를 해준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개성이 강하다.

단점으로는 건물 간 간격이 너무 좁기 때문에 맞은편 창문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을 정도였고, 아랍계 생활권이 크게 형성돼 있어서 치안이 좋지 못했다.

신시가지의 경우 이름만 들어도 알만 한 명품 샵들이 즐비해 있어서 치안이 엄청 좋은 동네였다. 상대적으로 대형 상점이 많아 우리를 흥분케 할 흥미로운 요소들은 적었지만, 스페인 지방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차역이(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역/KTX) 근처에 있어서 관광객에게는 더없이 좋은 동네다.

안전하게 이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가는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라는 것을 나는 일전의 바르셀로나에 소매치기 사건 이후 확실하게 알게 됐다. 그러려면 안전이 최우선! 신시가지로 확실히 마음을 굳혔다.

하루에 3만 보 발품을 팔아 무작정 부동산 문을 두드리길 N 번째. 운명적으로 보자마자 이건 찐 이야. 여기야. 우리가 원하는 곳이야 했던 곳을 발견했다.

그때까지 수많은 집을 보러 다녔지만 여기 만한 곳이 없었다. 깨끗하고 최신식인 것이 중요하지만 꼭 있어야 하는 게 스페인다움이었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모던한 건물들은 너무 식상하지 않을까? 그건 우리의 스타일이 아니니까.

조금 낡아도 멋이 깃들어 있는 곳. 이 집을 꼭 잡아야 했다. 부동산 관계자에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어떤 사람인지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그렇게 글 몇 줄로는 다 표현될 수 없이 어렵게, 스페인 중심 Gracia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가지고 있는 나이가 많은 건물 2층. 우리의 첫 게스트하우스 ‘바르셀누나네’ 다.

열쇠를 따고 집에 들어가던 첫날 막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까 급해져서 마음이 두 개가 되는 것 같다. 남해사는 여자랑 동해사는 여자애 둘이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집이 생기다니.. 아무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해낼 줄은 몰랐다. 그러나, 해냈다. 좋아하는 나라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됐다.

‘너무 멋져서 미치겠다.’

그동안의 걱정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멍청이 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처음 하는 일이 너무 많은데 메이와 함께라면 어디든 두렵지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일요일 아침 디즈니 영화를 기다리는 그때의 기분처럼 두근거렸다. 나대지마 마음아.

 

앨리스 #9. 아시안 둘? 아니 현지인 둘

설레어 넋을 잃고 있던 것도 찰나. 할 일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오픈전까지 보스몹만 나오는 난이도 상 게임 같은 삶이었달까.

난생처음 100평이나 되는 공간을 전문 인력 없이 둘이 쓸고 닦고 하다 보면 하루가 일주일이 훌쩍 이었다. 가구며 가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이렇게 많았나? 체크리스트를 적어서 상점에 가는데 뒤돌아서면 아차 하는 물건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아침 땡 하면 매일같이 편도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메이와 함께 다니곤 했다.

부동산은 전문적인 인력이 있는 곳이라 영어를 잘하는 편에 속했다. 현지인들과 생활에 필요한 대화를 하려면 전부 스페인어를 해야 했다.

산 넘어 산이라고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어와 까탈루나어 두 가지 언어를 쓰고 있는 도시였다. 시장이나 개인샵에 나가보니 번역기가 통하지 않는 일이 수두룩 했다. 물건의 부피가 보통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딜리버리 신청을 해야 했는데 몸짓 발짓을 하도 하다 보니 바디랭귀지가 크게 늘었다 ㅎㅎ

택시비 아끼자고 키보다 더 큰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꾸역꾸역 담아서이고 지고 버스를 타고 겨우 돌아오면 그 상대로 기절한다. 옆에 있는 메이도 죽어있기는 매한가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며칠 전에도 이러지 않았나? ‘

매번 힘들었던 일을 잊고 새롭게 희망하고 좌절하는 우리가 너무 어이없어서 실소가 터진다.

힘들고 지칠 때 서로 격려해주는 의미로 힘들면 ‘행복~’을 크게 외친다. 좌우지간 누가 행복 외치면 엄청 예민하구나! 힘들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오고 군데군데 검정 물을 묻힌 얼굴로 행복~ 하자니, 현실과 이상이 너무 달라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러면서 또 버틴다. 당장 다가오는 예약 날짜를 맞추려 한 달을 넘게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반복했다.

‘누구도 당장 이사 온 아시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걸? 우리 얼굴 봐봐 그냥 스페인 현지인 그 자체야’

어디에 무슨 상점이 있고, 이 상점 어느 위치엔 어떤 물건이 있는지를 다 외워버릴 정도가 돼서야 오픈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매번 어떻게 이런 새로운 방식으로 고통이 오지? 놀라울 정도로 심신 시련은 계속됐지만 이런 시간을 함께해 보니 나랑 같이 사는 이 친구가 어떻게 대처하고 이겨내는지, 뭘 제일 못하고 잘하는지 강제적으로 자세히 들여볼 수 있게 됐다. 우리의 우정이 한층 더 끈끈해지는 그런 날들.

오픈은 바로 코앞, 이제 게스트가 온다. 메이야 우리 잘할 수 있을까? by 벨레 매거진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은 계속됩니다.

 

여담

확실히 이번 편 관련된 사진을 찾아보자니 뭣도 없다. 힘든데 사진 찍을 여유 따위는 없었나 보다. 오픈 전까지 모든 가구를 배치하고 인테리어를 마무리할 때까지 우리가 했던 외식은 고작 3번 정도. 이때 우리의 행색이 가장 초라하고 웃겼는데 사진이 많이 없어서 아쉽다.

 

<지난 콘텐츠>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Prologue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1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2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3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4_

타인의 취향을 엿보는 공간,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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