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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서울씬기행] 한 챕터를 마무리하며

DATE. 2021.07.16.

서울씬은 누구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 도시에 도래할 것이다. 그때까지 안녕히.

2010년대 중반 서울은 청춘의 힘으로 들끓고 있었다. 미술계에서는 수많은 대안공간이 새로 생겨 기존의 전시공간에 자리를 얻지 못한 젊은 작가들을 위한 전시회가 열렸다. 음악계에서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이 결성되어 한국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아방가르드하고 정치적인 인디 음악의 세계가 펼쳐졌다.

나는 당시 홍대의 작은 칼국수집 두리반에서 뻗어나간 이 움직임을 두고 ‘서울씬’이라고 이름 지었다. 홍대의 밴드씬에서 ‘인디’라는 이름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때문에 ‘인디’ 대신 ‘자립’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자는 흐름이 있었다. 그렇다면 홍대씬의 좁은 규정을 벗어나 서울 전체가 하나의 씬으로 기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운동이 사그라들고 관련된 사람들의 종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된 지금에 와서는 서울씬이라는 구상은 옛 추억으로만 남았다. 벨레 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서울씬기행’을 통해 나는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 현재 나아가 미래의 움직임을 예측해보려고 했다. ‘서울씬기행’은 서울씬과 기행의 합성어로 읽힐 수도 있지만 ‘서울’과 ‘씬기행’, ‘신기해’의 합성어로도 읽을 수 있다.

이 말장난 같은 시리즈를 시작해 많은 밴드와 공연 공간들, 바, 기획자들에 대해 다루었다. 그리고 이제 이 시리즈를 마감할 때가 되었다. 이야기를 끝내기 전에 서울씬이란 단어에 대해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서울은 자영업자의 도시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나와 종업원 없는 자영업자가 되기도 하고, 1인이나 2인을 고용하는 소규모 자영업자가 되어 생계를 꾸려나간다. 이들은 사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기업가가 되지는 못한다. 이들에게는 자본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본 없는 자본가. 자영업자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노동 계층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자영업자 중에는 기업형 자영업자들도 얼마든지 있다. 수십 개의 영업장을 오토로 돌리며 사장 노릇을 하는 자본가들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우리가 점심때 방문하게 되는 음식점 하나하나가 자영업자들에 의해 운영된다. 이들은 대부분 한 달 장사로 한 달의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이다.

코로나로 인해 빈사 상태로 몰린 자영업자들은 임대료와 권리금의 굴레에 갇혀 쉽게 탈출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들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존재가 바로 건물주다. 건물주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 하는 선망의 대상인 동시에 우리 이웃인 자영업자들에게 큰 짐을 지우는 사람이다.

특히 건물주의 손바뀜이 있을 때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배가 된다. 한국 사회에서 문화가 충분히 개화하지 못하는 이유를 높은 임대료와 권리금 때문으로 돌리는 의견도 있다. 임대료와 권리금을 내고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장사를 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은 과거 용산 참사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전사가 되어버렸다.

칼국수집 두리반 사건은 그러한 자영업자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들의 고통에 연대하여 청년들이 나서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건물주, 건설회사와 임대인간의 다툼 속에서 한국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 사조가 생겨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를 우연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필연이라고 봐야 할까.

나는 필연이라고 보는 쪽이다. 때문에 서울의 자영업자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관계망을 두고 서울씬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았다. 이들은 때로는 공연자일 수도 있고, 기획자이기도 하며, 공연장 주인이기도 하다. 홍대에 위치했던 ‘한잔의 룰루랄라’란 만화 카페가 사라지고 그 주인이 이 자영업자들의 네트워크를 타고 공연을 열거나 팝업샵을 여는 모습을 보면 서울씬이란 그냥 말장난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경영학 쪽에서는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르는 삶을 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된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인디씬의 기획자가 되어 새로운 음악을 찾아내고 공연을 만들고 때로는 철거 농성장에 들러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무키무키만만수 안드로메다 영상]

이들의 삶은 신산하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고정된 수입이 없이 몇 달 넘게 버텨야 할 때도 있다. 이들이 하는 행사나 공연은 대체로 큰돈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를 프리랜서라고 불러도 좋다. 서울씬에는 점점 이런 사람들이 모여들어 공연을 보다가 공연자가 되고, 공연장을 열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인디씬에서는 이러한 음악인=생활인들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사람이라도 이때의 일을 언급하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들에게는 그저 잊고 싶기만 한 과거이기 때문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째서 이 땅에 할 일 없이 음악을 하는 청년들이 그렇게 많이 동시에 등장했느냐 하는 것은 의문 부호로만 남아있다. 그들에게 상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찬사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모두 사라졌다.

나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서울씬’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언젠가 이 도시는 다시금 혼란과 분쟁, 연대와 투쟁의 회오리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서울은 조용한 도시가 아니다.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비아냥거림이 어울릴 만큼 서울은 매일같이 건물이 사라지고 새롭게 들어선다.

이 삶 속에서 우리는 핸드폰 하나만을 들고 자신이 아는 번호의 네트워크 속에서 떠돌게 된다. 어쩌면 하나의 네트워크가 다른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거대한 연결망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드물지만 가끔씩 일어난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장소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곳이 될 것이다. 삶에 가장 가까운 곳, 이 사회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 젊은 청년들이 모여드는 곳이 바로 새로운 서울씬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그러한 세계에 대해 상상해본다. 다시 한번 사람들이 모여 돈이 들지 않아도 재미있는 일을 꾸미기 위해 토론을 벌이는 세상을 꿈꿔본다. 그런 날이 다시금 온다면 나는 또 그곳에 스며들어가 그 모든 것들을 보고 들을 것이다.

서울씬은 누구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 도시에 도래할 것이다. 그때까지 안녕히.

끝. by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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