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뭐볼까] 악마의 눈을 피하는 법 –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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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오늘뭐볼까] 악마의 눈을 피하는 법

DATE. 2021.07.26.

[영화 <조커>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실의 서울을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아웃사이더 – 조커로서의 면모가 조금이라도 아티스트 – 코미디언으로서 승화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대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명이다. 또 다른 아서 플렉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최근 영화 조커가 OCN을 통해 케이블 TV 시장에 풀렸다. 물론 나는 영화관에서 조커를 봤다. 영화관에서 봤을 때도 충격적이었지만 집에서 TV로 보니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점들도 많이 보였다. 이 영화는 어떻게 한 인간이 광기에 지고 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다.

영화 조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주연인 호아킨 피닉스가 메마른 몸으로 등뼈를 통해 연기를 한다든가 DC 코믹스의 주요 빌런인 조커가 또 한 번 자신의 전설을 갱신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호아킨 피닉스 이전의 조커들, 잭 니콜슨, 히스 레저와 같은 인물들이 연기한 캐릭터도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았고 코믹북 이상의 효과를 자아냈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이전의 조커보다 훨씬 더 음울하고 기분 나쁘며 어떤 면에서는 더욱 현실적인 인물이다.

배트맨의 주요 빌런인 조커로 변신하게 되는 주인공 아서 플렉은 광대 분장을 해서 먹고 산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차가우며 버릇없는 10대들의 모습으로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자신을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하는 아서 플렉은 누구도 웃기지 못하는 조크를 공책에 써내려 간다. 그는 아픈 어머니와 함께 살며 타인에게 웃음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조커의 가장 큰 비극은 아서 플렉이 하는 모든 행동이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섬찟하다는 점이다. 아서 플렉은 10대들에게 얻어맞은 후 자신을 지키라며 동료로부터 총을 얻는다. 아동 병원에서 광대 일을 하던 그는 실수로 총을 떨어뜨리고 일자리를 잃는다. 그는 끝까지 자신은 연기를 위해 가짜 총을 아동 병원에 가져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아서 플렉의 광기는 자기 자신조차 속인다는 점에서 공포스럽다. 그는 타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같은 층에 사는 흑인 여성과의 로맨스는 그를 가장 지독한 궁지에 몰아넣는 환상이다. 극 중반까지 아서 플렉을 지탱하는 것은 그나마 자신을 사랑해주는 어머니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고아이며, 어머니는 아서 플렉이 어렸을 때 그를 학대당하도록 방치했던 인물임이 밝혀진다.

아서 플렉의 심리는 타인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선의에서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고 싶다는 악의로 바뀐다. 이 전환의 과정에서 아서 플렉은 자신의 본래 이름을 버리고 조커라는 이름을 대신 사용하게 된다. 조커란 이름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아서 플렉은 그가 즐겨 보는 머레이 쇼의 사회자 머레이가 자신을 조커라고 언급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머레이는 전혀 기억에 없다는 얼굴이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는 조커의 탄생비화가 여러 번 다루어진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반대로 영화 조커에서는 배트맨의 탄생 비화에 해당하는 부모의 살해 장면이 들어있다. 더군다나 브루스 웨인의 부모가 죽게 되는 원인 중 일부가 조커에게 있음을 알리기까지 한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마치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 뱀처럼 서로를 집어삼키며 어디가 꼬리이고 어디가 머리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영화 조커에서 고담은 무정부 상태로 접어들며 너나없이 광대 가면을 쓰고 시위를 벌인다. 아서 플렉을 따라잡기 위해 총을 빼들었던 경찰들은 지하철에서 수많은 광대 가면에 휩싸여 결국 그를 놓쳐버리고 만다. 만인의 조커화. 조커가 노리는 광기의 전파가 전 도시를 아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영화는 한 명의 인간이 어떻게 해서 완전히 패배하게 되는가, 혹은 자신이 패배한 사람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는가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서 플렉은 처음부터 코미디언의 재능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서 플렉 자신뿐이다.

그는 파괴된 사람이며, 그 원인은 태생부터 불행했던 과거에 있다. 아서 플렉은 아직 자신의 모든 것을 알아내지 못하지만 결국에는 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아서 플렉이 맞닥뜨리는 진실은 바로 그가 시스템에 의해서 굴복당하고 모욕당하는 인물 중 하나라는 점이다.

조커가 원하는 파괴는 자기 파괴를 향한 열망의 다른 모습이다. 그는 권총을 목덜미에 대고 쏘는 시늉을 한다. 권총은 발사되지 않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조각난 자신의 모습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에게는 친구도 없고, 부모도 없다. 꿈도 없고 직업도 없다. 아서 플렉은 자아마저 잃어버린 상태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분명히 알지 못한다. 결국 그에게 남는 것은 조커라는 새로운 이름과 총 한 자루다.

조커, 아서 플렉이란 과거의 이름을 버린 빌런은 비통하면서도 흥겨운 춤을 추는 모습으로 자신의 등장을 알린다. 도시는 불타고 사람들은 모든 것을 파괴하려 든다. 모두가 조커의 이름을 연호하며 박수를 친다. 경찰차가 불타는 모습을 배경으로 조커가 춤추는 모습을 묵묵히 보여주는 이 영화는 히어로 영화 사상 최악의 빌런이 어떻게 평범한 도시의 광인으로부터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

과거 아웃사이더 예술이란 용어는 범죄자, 정신병자의 그림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현재는 주류와는 분리된 관습적이지 않은 아이디어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이 용어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광기만이 예술을 완성한다는 다소 낭만적인 가정을 하고 있다.

국내에도 출간되어 사상계에 일정한 영향을 준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에서는 이러한 가정을 미술만이 아니라 문학과 춤 등 예술계 전반으로 확장하여 논의하고 있다. 콜린 윌슨은 뛰어난 예술가들은 아웃사이더로서의 성향이 있으며, 이들의 광기가 예술의 자양분이 된다는 자못 논쟁의 여지가 있는 논지를 펼친다.

이와 같은 배경하에서 조커를 살펴보면 주인공 아서 플렉은 전형적인 정신병질자로 아웃사이더에 속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예술가로서의 자질이 전무한 나머지 범죄만을 저지르게 된다. 그의 인간으로서의 완벽한 패배에서 우리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거대도시의 악몽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더러운 지하철에서 미국의 거대 도시 뉴욕을 연상케 하는 고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과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기묘한 거울상을 띠고 있다. 정치인은 부패하고 관료제는 타락한 도시에서 광기에 물들지 않고 생을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일상에서 부딪히는 불편함에서 오는 화풀이와 아서 플렉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광기를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후자에 접근할수록 그 사람은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에게 남는 것은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뿐이다.

현실의 서울을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아웃사이더 – 조커로서의 면모가 조금이라도 아티스트 – 코미디언으로서 승화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대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명이다. 또 다른 아서 플렉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by 벨레 매거진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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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g in2023.03.12. /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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