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뭐볼까] 꽃다발 같은 사랑 –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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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오늘뭐볼까] 꽃다발 같은 사랑

DATE. 2021.08.01.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 사랑은 인간의 마음이 하는 일이다. 아무리 열렬했던 사랑도 세월 앞에서는 식기 마련이며 두 연인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서 떠나고 만다. 이들의 사랑은 그 자체로 순수했지만 꼭 결말이 결혼이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식의 동화 같은 끝맺음일 수는 없다.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일본의 청춘스타 스다 마사키와 아리무라 카스미가 주연한 멜로물이다. 두 사람은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에서도 주연으로 출연하는 등 최근에 같이 활동하는 일이 많은 편이다. 이 영화에서 연인으로 등장하는 두 사람은 스물한 살 대학생 동갑내기의 사랑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영화는 두 사람이 이미 헤어져서 다른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시작한다. 노래방에서 열린 미팅에서 만난 무기와 키누는 막차를 놓치게 된다. 이왕 막차를 놓친 김에 밤새도록 영업하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기로 한 둘은 서로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좋아하는 소설도, 음악도 비슷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금방 의기투합하게 되고 두 번째, 세 번째 만나면서 사귀기에 이른다.

이 영화는 어떻게 해서 평범한 연인이 만나고 사랑을 나누며 헤어지는가에 대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밀착해서 접근하고 있다. 시작은 우연의 일치였고 이들의 사랑은 불꽃처럼 강렬했다. 하지만 그만큼 사랑이 식었을 때 찾아오는 괴로움이 강력했다.

사람의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재가 바로 밴드 음악과 소설, 연극, 만화와 같은 취미 생활이다. 노래방에 간 두 사람은 일본 밴드 ‘키노코 테이코쿠’의 ‘크로노스타시스’라는 곡을 같이 부르는데 이 노래는 당시의 청년 문화 중 일부를 상징한다. 자신의 생일과 시계의 숫자가 동일 해지는 순간을 의미하는 이 곡은 두 사람을 엮어주는 공통분모다.

키노코 테이코쿠는 본래는 포스트락 성향의 시끄러운 음악을 하다가 팝적인 음악 색으로 옮겨간 밴드다. 이들은 2020년에 활동을 중지하게 되는데 이것은 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무기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된 키누는 무기의 서가를 보고 자신의 서가와 일치한다며 놀라워한다. 이들은 수시로 소설가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에 때 묻지 않은 학생 커플로서의 달달함을 선보인다.

문제는 학생 시절이 끝나고 나서다. 살림을 합치고 동거를 시작한 무기와 키누는 일단 알바를 해서 생활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키누의 부모님이 두 사람의 집을 방문하면서 무기와 키누는 구직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키누의 어머니는 사회에 나간다는 것은 욕조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말을 반복한다. 욕조에 들어가기 전에는 귀찮기 짝이 없지만 일단 들어가고 나면 더없이 만족하는 것처럼 사회에 진입하기는 어려워도 일단 사회의 일원이 되고 나면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대학생끼리의 순수한 사랑이었을 때는 부모님이 보내오는 생활비에 아르바이트비를 더해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동거를 시작하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자 부모로부터의 지원은 끊기게 된다. 사랑이 생활이라는 적 앞에서 무너지는 시점이 온 것이다.

회계 자격증을 따서 비교적 쉽게 취직한 키누와 달리 무기는 면접 탈락의 연속이다. 점점 지쳐가는 무기에게는 작은 회사의 별 볼 일 없는 일자리도 감지덕지다. 이들이 직장을 구하게 된 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공동생활을 ‘현상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직장을 구하고 나니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인해 두 사람이 공통된 화제를 갖고 이야기할 시간이 적어지게 되었다.

이전에는 빵집에 간 기억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던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키누가 노부부가 운영하는 빵집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 빵집이 사라졌다고 라인 메시지를 보내자 무기는 역 앞 다른 빵집에서 사면된다며 무심한 답변을 보낼 뿐이다. 무기의 입장에서는 사회의 현장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전히 학생 기분으로 생활하는 키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변해버린 무기의 모습에 키누는 상처를 받고 점점 두 사람의 사이는 마치 갱년기의 중년 부부처럼 무미건조한 사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여기에서 이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대립항이 드러난다. 무기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며 진지하게 생활 전선에 나가서 제 몫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을 상징한다. 키누는 직장생활을 하되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에 매여 있을 수는 없다는 쪽이다. 안정되고 재미없는 직장보다는 급여가 적고 계약직이더라도 신나게 할 수 있는 이벤트 기획사 일을 키누는 선택한다. 이런 키누가 무기는 못마땅해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무기가 내놓는 카드가 바로 결혼이다. 둘의 사이가 가장 멀어졌을 때 역설적이게도 평생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두 사람의 연인으로서의 유효기간은 끝났지만 가족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이를 낳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면서 정으로 살아가는 사이가 되자고 무기는 제안한다. 무기가 생계를 책임질 테니 키누는 일을 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도 된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긴장이 극에 달하고 플롯상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키누의 선택은 우리가 영화 처음에서 본 대로 헤어지는 것이다. 애초에 두 사람의 사랑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사귀기 시작했을 때는 마치 운명처럼 동질감을 느꼈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끝날 때가 정해져 있는 사랑이었다.

인간의 마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 사랑은 인간의 마음이 하는 일이다. 아무리 열렬했던 사랑도 세월 앞에서는 식기 마련이며 두 연인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서 떠나고 만다. 이들의 사랑은 그 자체로 순수했지만 꼭 결말이 결혼이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식의 동화 같은 끝맺음일 수는 없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제목을 돌아보면 두 사람의 사랑이 진정 꽃다발과 같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꽃다발은 처음 사서 선물했을 때는 활짝 피어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들고 말라버린다. 결국 꽃다발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만다.

이 영화는 일본의 청년 대중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2배로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가 엑스트라로 깜짝 출연하기도 하고,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와 밴드들이 거론되기도 한다. 자신이 알고 있던 밴드나 소설가가 영화에 언급될 때 작은 쾌감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영화에서 놓쳐서는 안 될 캐릭터는 오다기리 죠다. 오다기리 죠는 작은 영화나 큰 영화를 가리지 않고 작은 역할로 출연하는 일이 많다. 이 영화에서도 키누가 취직하는 이벤트 회사의 사장 역할을 맡아 잠깐 동안 이야기에 등장한다. 능글맞은 중년 남성의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오다기리 죠의 모습은 영화를 즐거움을 배가 되게 한다.

심각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를 깊은 생각에 빠지는 일 없이 즐겨볼 수 있다. 그들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과 같지는 않겠지만 어딘가 우리 모두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있는 것 같다. by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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