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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서울씬기행] 낮에는 커피 향에, 밤에는 공연 흥에

DATE. 2021.03.19.

서울씬이란? 서울은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다. 강북과 강남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사람들은 거미줄처럼 이어진 지하철을 통해 서울 구석구석을 오간다.

어떤 학자는 경기도와 의정부 인근을 합쳐 ‘대서울’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서울 주변의 위성 도시들이 서울 생활권과 밀접하게 연결된 점을 감안한 제안이다.

서울은 한국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때로는 한국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서울씬이란 ‘서울’이란 지명과 장소, 순간을 의미하는 ‘씬scene’을 합쳐서 만들어낸 조어이다.

서울에서 무너지고 사라지고, 또 생겨나는 공연장, 펍, 카페, 전시장, 영화관 등을 이 서울씬이라는 의미 구조 안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제비다방

아이유와 오혁이 2015년에 같이 부른 ‘공드리’의 라이브 영상이다. 둘은 마치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들이 무대에 선 곳은 작은 카페 겸 공연장인 ‘제비다방’이다.

상수에 위치한 제비다방은 지하의 공연장과 지상의 카페 공간이 뻥 뚫린 천장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제비다방에서 공연을 보다 보면 가끔 위에서 포크가 떨어질 때가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2012년 4월 상수동에 문을 연 제비다방은 무료 입장, 유료 퇴장이라는 자발적 모금 방식의 공연을 1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매주 이곳에서 공연을 여는 많은 밴드와 가수들 중에 아이유와 혁오가 추가되었다는 것은 이곳이 현재 홍대에서 가장 힙한 공연장임을 증명한다.

웹진 아이즈에 따르면 본래 홍대에서 활동했던 오혁이 즉흥적으로 제비다방에서의 공연을 결정했고 아이유에게 의사를 물어봐 성사되었던 공연이라고 한다.

제비다방은 월초에 미리 라인업을 정해서 공연을 공지하는데 아이유와 혁오가 섰던 날에는 가상의 밴드 이름이 대신 올라와 있었다. 깜짝 공연은 금방 SNS로 퍼졌지만 채 30명이 들어서기에도 좁은 제비다방에서 직접 관람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신 유튜브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오혁의 반주에 맞춰 공드리를 부르는 아이유의 목소리에는 소규모 공연장 특유의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울림이 담겨 있는 듯하다. 제비다방에서의 공연은 다소 시끌시끌한 카페의 백색 소음이 더해지는 것이 특색이다. 제비다방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뮤지션들이라서 그런지 관객들이 숨을 죽여 감상하는 모습이다.

홍대 앞 카페에 모습을 드러낸 유명 스타가 아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태춘의 공연에 가수 이효리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라이브클럽 오뙤르의 사례가 있다. 당시에는 김태춘이 이효리의 5집 음반에 작사, 작곡으로 참여한 인연이 작용했다. 이효리의 남편인 이상순이 홍대 씬에서 DJ로 활동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제비다방이 특별한 공간인 이유는 뮤지션이 공연 당일 모금한 금액을 전부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대관료나 페이는 없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부담 없이 공연을 보러 와서 그날 만족했다면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하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냥 자리를 떠도 괜찮다.

공연을 보고 있으면 마치 교회의 헌금함처럼 돌아다니는 돈통에 돈을 넣을지 말지는 전적으로 그날 관객의 마음에 달려 있다.

이처럼 열린 공간인 제비다방에는 인디 리스너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밴드나 가수들도 여럿 이름을 올린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물론 아이유와 혁오의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다.) 크라잉넛의 베이스 주자인 한경록이 자신의 생일 기념 공연인 ‘경록절’ 라이브를 일부 제비다방을 통해서 진행한 바 있다.

또 제비다방은 2015년부터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여 이곳에서 공연을 해왔던 뮤지션들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음반이 발매되면 제비다방에서 기념 공연을 연다.

컴필레이션에 참여하는 인디 뮤지션들의 면면이 다양하다. 최근에 발매된 2020/2021년판 컴필레이션에는 오헬렌&최솔, 밴드 88, 몽림, YOZA, 불고기디스코, 연희별곡, 까데호가 참여했다.

제비다방은 운영방식도 독특한데 낮에는 보통의 카페처럼 운영하지만 밤에는 ‘취한제비’라는 이름 하에 와인부터 위스키까지 여러 종류의 술을 판매한다. 카페에서 술을 잘 마시지 않는 한국의 풍토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운영방식을 고수하는 제비다방은 인테리어로 손님을 끄는 흔한 인스타그램 정서의 카페가 아니다.

오랫동안 지역 밀착형으로 영업을 해오면서 홍대 뮤지션들과 교류한 문화적 자본을 바탕으로 과거 시인 이상이 차렸다는 ‘제비다방’처럼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서로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홍대 앞 소식을 다루는 매체 ‘스트리트 H’에 따르면 제비다방의 연원은 2005년 오창훈, 이상훈, 오상훈 세명의 친구가 모여 만든 ‘문화지형연구소 씨티알’이라는 문화 단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클럽 FF 2층에 ‘레몬쌀롱’이라는 공간을 열어 운영하다가 상수동에 제비다방이란 이름의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 활동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한 오상훈 소장은 8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을 독특한 풍취가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홍대와 인근 자영업자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임대료 걱정은 없는 걸까. 다행히 제비다방은 임대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건물을 사서 입주한 것이라고 한다. 무료 입장, 유료 퇴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입장료 시스템을 홍대 전반에 퍼뜨린 공연장답게 뒷배가 든든하다. 대관료 수입 없이 음료 판매만으로도 운영에는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문화지형연구소 씨티알은 씨티알싸운드라는 자체적인 레이블을 갖고 있다. 이 레이블에 속한 뮤지션들은 컴필레이션 앨범에도 자주 참여하고 제비다방의 공연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다. 2021년 현재에는 이은철, 곽푸른하늘, 해토, 정우, 김일두, 최고은, 김재훈이 속해 있다.

뮤지션들에게 제비다방은 어떤 공간일까.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밴드 까데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제비다방은 공연을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혹은 손님들에게도 쉼터로 느껴지는 곳입니다. 한적한 위치나 구조에서 오는 편안함이 동네 사랑방으로서 최적화된 공간이고 저희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애정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뮤지션의 관점으로 봐도 꾸준한 공연과 컴필레이션으로 단단히 유지해주시는 행보에 너무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제비다방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뮤지션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은 신뢰를 받게 되었을까. 레코딩부터 음반 제작, 공연까지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제반 환경과 건물주라는 안정된 위치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를 다루는 시각에 있다.

30대 시절부터 밴드맨들과 막역한 사이로 지내온 문화지형연구소 씨티알의 구성원들은 이제 젊은 사람들의 놀이공간을 열어주는 지원군으로서 힘을 다하고 있다. 단순히 물질적인 요소만으로 뒷받침하는 것만이 아니라 문화를 함께 만들어내는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제비다방이다.

제비다방에서 카페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부터 무대에서 서는 인디 가수들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일종의 소명감, 홍대 앞 문화의 첨병으로서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는 공통된 감정이 이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제비다방은 단순한 카페로서의 역할을 넘어 TV에서만 보던 스타가 소박한 무대를 마련해주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카페라는 업종으로서의 역할도 특이하지만 문화공간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공연장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by 벨레 매거진

 

제비다방

사진 출처 : 미러볼 레코드, 시티알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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