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STUFF] 인디 가수 기타 레슨 받지 않기 –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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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나의 STUFF] 인디 가수 기타 레슨 받지 않기

DATE. 2021.03.23.

인디 가수에게 기타 레슨은 일종의 팬서비스라는 것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로 레슨이 필요하다면 기타 학원을 다닐 일이지 인디 가수에게 기타를 배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레슨을 받고 3~4주가 넘어서야 깨달았다. 때문에 상황이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디 가수는 A란 포크 가수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대안학교를 나와 졸업 발표물로 음반을 제작했다. 어린 나이에 인디씬에서 활동하다 보니 홍대 아이유란 별명을 얻었다. 덕분에 홍대 아이유 결정전이란 이름의 공연에 참가하기도 했다.

A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슈퍼스타 K7에 출연하면서다. 높이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줘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A의 공연 소식을 얻기 위해서 어느 날 그녀의 트위터를 방문했다. 마침 기타 레슨을 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기타를 칠 줄도 모르고 기타도 없었지만 그녀를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레슨을 신청했다. 다행히 선착순으로 5명 중 한 명으로 뽑혀 그녀의 레슨을 받게 되었다.

나는 바로 홍대에 가서 악기점을 들렀다. 어쿠스틱 기타 중에 크래프터란 브랜드에 속하는 값싼 기타를 골랐다. 입문용으로 괜찮을 것 같았다. 십만 원을 겨우 넘기는 이 기타를 들고 레슨 시간에 맞춰 카페 언플러그드로 향했다.

카페 언플러그드는 카페 안에서 기타를 칠 수 있는 곳으로(후에는 방침이 바뀌었다.) 기타 레슨이 종종 이루어지곤 했다. 지하 공연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카운터에서 티켓팅을 할 때 기타 소리가 전신을 휘감곤 했다.

레슨을 받으러 온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4명이 남자였고 1명이 여자였다. 다들 20~30대로 보였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A는 어쩐지 겸연쩍은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돌아가며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여자 수강생이 어딘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억을 되새겨 보니 케이블 TV에 종종 나오는 명문대 출신의 연반인(연예인+일반인)이었다.

반가운 느낌이 들어 그녀에게 혹시 TV에 나왔던 사람 아니냐고 묻자 여자 수강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온 남자 수강생이 “뭐야, 연예인도 아니잖아.”와 같은 말을 하면서 어깃장을 놓았다. 초면에 뭐라고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넘어갔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A는 각자에게 얼마나 기타를 칠 줄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전혀 칠 줄 모른다고 하자 그녀는 코드 잡는 법부터 시작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기본적인 코드를 배우고 ‘곰팡이’란 노래의 악보를 받아 들었다.

우리는 어설프게 코드를 짚으며 2시간 동안 곰팡이를 연습해나갔다. 카페에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의 개인 ‘언돌이’가 돌아다녔다. 손님들로부터 간식을 얻어먹는 게 습관이 된 개였다. 특히 여자 손님한테는 막무가내로 들이대면서 간식을 요구했다.

2시간 남짓 레슨 시간이 끝났다. 나는 흐릿한 언플러그드의 불빛 속에서 좋아하는 인디 가수와 2시간을 기타를 치면서 보낸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문제는 어딘가 불만이 많아 보이는 깁스한 남자 수강생과 내 기타 실력이었다. 깁스한 남자 수강생은 가볍게 무시하면 될 일이었다. 기타 실력은 단시간 만에 늘어날 것 같지 않았다.

더군다나 A는 레슨이 끝나는 2달 후 간단한 공연을 개최해서 수강생들이 연주를 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져 주말에도 아버지 차를 몰고 홍대까지 와서 언플러그드에서 기타 연습을 하곤 했다. 기타 줄 때문에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시민단체를 다니고 있었는데 사무실이 있는 서촌에서 홍대까지 시간을 맞춰 가려면 빠듯했다. 직장에 기타를 들고 오지 않는 이상 제때에 레슨시간까지 도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방 출장까지 잦았던 터라 기타를 언플러그드에 맡겨야만 했다.

카페 쪽에서는 따로 기타를 맡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기타에 이름을 써놓고 카페에 비치해놔도 된다고 제안했다. 카페에 비치된 다른 기타처럼 손님들이 연주해도 상관없고, 중간에 분실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다.

오전에 지방에 내려갔다가 오후에 서울로 올라오면 바로 홍대로 향하는 스케줄이 금요일마다 펼쳐졌다. 몸은 고되었지만 레슨을 받는 2시간 동안에는 꿈결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 행복한 시간은 잠시였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강해졌다. 우선 수강생들이 생각보다 기타를 잘 쳤다. 어떤 남자 수강생은 레슨이 끝나고 A가 자리를 뜨자 복잡한 아르페지오를 연주하기까지 했다.

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여자 수강생은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를 해서 싱글을 낸 기록이 있었다. 레슨을 받는 사람 중에서 정말로 레슨이 필요한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었다.

또 생각보다 A가 기타를 잘 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말로는 기타를 배운 것은 어렸을 때 클래식 기타 레슨을 몇 년 받은 것이 다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졸업 결과물로 앨범을 내고 홍대에서 공연을 해왔다면 천재가 아닌 이상 연주 실력이 탁월하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인디 가수에게 기타 레슨은 일종의 팬서비스라는 것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로 레슨이 필요하다면 기타 학원을 다닐 일이지 인디 가수에게 기타를 배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레슨을 받고 3~4주가 넘어서야 깨달았다. 때문에 상황이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A에게 정확히 코드를 잡을 수 있도록 손가락 위치를 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또는 기타 튜닝을 하는 것이 힘들어 그녀에게 대신 튜닝해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때마다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 기타 레슨이 팬미팅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내 요구는 무리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왜 레슨을 받는 사람한테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런 요구를 할수록 분위기는 점점 더 이상해졌다. 급기야는 기본적인 코드 잡는 법을 다시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나에게 깁스를 했던 남자 수강생이 “그렇게 해서는 공연 못해요!”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나는 그 순간 고개를 푹 숙이고 그 남자 수강생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대신 카운터로 가서 독한 술을 시켜 스트레이트로 연거푸 3~4잔을 마셨다. 내가 자리로 돌아오며 비틀거리자 여자 수강생은 꺄악하는 소리를 냈다. 레슨이 끝나고 나는 깁스를 했던 남자 수강생과 1대1로 마주 앉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사람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나도 술에 취한 김에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1~2시간 정도 기싸움을 하고 나서 깁스를 했던 남자 수강생이 자리를 떴다. 나는 그동안 거의 누운 채 기타를 아무렇게나 치고 있었다. 알바가 다가와 기타를 뺏어갔다. 나는 터덜터덜 그 자리를 떠났다. 이 일이 있고 난 후에 나는 레슨을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A의 공연을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좁은 공연장에서는 가수와 관객이 서로를 알아볼 정도로 가깝기 때문이다. 나는 내 얼굴을 확인한 A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본 날 이후 그녀의 공연을 가지 않았다.

그리고 4~5년이 흘렀다. 그녀는 여전히 홍대 어딘가에서 공연을 하거나 레슨을 한다. 나는 쓰라린 기억만을 안고 있다가 최근에야 그녀의 공연에 다시 갈 수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내 얼굴을 잊어버릴 정도의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때 산 어쿠스틱 기타는 여전히 부모님 집 내 방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나는 여전히 기타를 치지 못한다. 코드 잡는 법을 모조리 잊어버렸다. 그리고 이 기억도 조만간 잊어버릴 것이다. by 벨레 매거진

크래프터 어쿠스틱 기타

출처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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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2023.11.16. /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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