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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서울씬기행] 만약 서울이 불바다가 되었다면

DATE. 2021.04.27.

밤섬해적단은 과격한 가사와 음악을 통해 농담과 사회비판을 오갔던 밴드다. 이전의 인디 역사에서도 펑크 밴드들이 유사한 음악을 시도한 적이 있으나 밤섬해적단은 펑크의 계보에는 속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홍대 인디 밴드들의 모습을 비웃는 입장에 서 있다.

서울씬은 단순히 서울에 있는 공연장, 술집과 같은 장소들만의 조합이 아니다. 그 공간을 운영하고 드나드는 사람들과 밴드, 모임, 조직이 서울씬의 뼈대를 이룬다. 이번 글에서는 서울에서 모여 활동했던 밴드와 사람들의 흔적을 추적해보려고 한다.

 

밤섬해적단

인디 밴드 밤섬해적단이 2010년 낸 ‘서울불바다’란 앨범은 1994년 3월 19일 판문점에서 열린 회담에서 북한의 장관 박영수가 했던 발언에서 유래했다.

당시 그는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라고 말해서 한동안 논란이 되었다.

그라인드코어라는 특이한 장르를 표방하고 나선 밤섬해적단은 베이스와 드럼 단 2개의 악기만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자립음악생산조합이라는 인디 음악가들의 모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다음은 ‘서울불바다’에 수록된 곡 리스트다.

[썸네일은 무시하자]

 

1. 나는 씨발 존나 젊다

2. 전우들과 함께라면 어떤 씨발 것이든

3. 해치

4. 성경이 진리이듯이

5. 인간의 본분

 

등등 42개의 트랙이 빼곡히 수록되어 있다. 그들의 음악을 여기서 전부 다 소개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일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트랙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밤섬해적단의 음악은 욕설과 정신 나간 궤변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궤변들은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농담인 동시에 사회비판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밤섬해적단에서 드럼을 쳤던 권용만 씨는 실천문학 겨울호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까지 한 기록을 갖고 있다. 그의 등단에는 소설가 장정일의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2011년 실천문학 겨울호에 실린 ‘김정일 만세’라는 가사를 통해 권용만 씨는 시인이 될 수 있었다.

얼핏 보면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 같지만 실은 김정일과 동명이인인 남한의 작곡가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다. 다분히 시인 김수영의 유작 시 ‘김일성 만세’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김수영의 시에서는 진짜로 북한의 김일성 만세를 외쳤다면 밤섬해적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농담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다음은 ‘백범살인일지’라는 곡이다.

가사가 잘 들리질 않지만 대체로 “김구짱 김구짱 이승만 병신”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또 노래를 부르기 전에 멘트를 들어보면 김구 선생이 일본인을 죽인 ‘치하포 사건’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곡이다. 이처럼 밤섬해적단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풍자를 함으로써 이념적인 이슈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이 경우와 같이 이들의 공연은 드러머 권용만 씨와 베이스 장성건 씨의 만담에 가까운 멘트 주고받기가 큰 특징인데 사회적인 요소를 끌어들여 농담과 해학으로 승화시킨다.

이들의 이야기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져 상영된 바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밤섬해적단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다가 친구인 박정근 씨의 국가보안법 소송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된다.

전면적으로 국가보안법을 비웃고 있는 밤섬해적단의 노래와 성향을 살펴봤을 때 하늘이 내린 기회를 잡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우연이다. 권용만 씨는 박정근 씨의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해 ‘서울불바다’의 앨범커버 사진과 25번 트랙인 ‘김정일 만세’라는 곡을 증거물로 제출하기도 했다.

밤섬해적단의 곡들은 하나 같이 1분 내외의 짧은 곡이고 가창 방법은 그저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다. 이들이 참고했다는 그라인드 코어라는 음악 자체가 노이즈에 가까운 굉음을 내는 장르 중 하나이다. 이들은 그러한 틀에서 잘 들리지 않는 가사를 통해 사회 비판을 시도하고 있다.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서 이들은 PPT를 준비해 가사를 띄워놓고 공연을 한 적도 있다. 대학 생활과 회사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PPT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한국 사람들의 일상을 풍자한 시도다. 이처럼 이들의 음악 행위는 장난과 사회적 비판을 넘나들었다.

밤섬해적단은 홍대 클럽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두리반 분쟁 사건을 계기로 명동 재개발 시위 현장, 제주도 해군기지 반대 시위장과 같은 사회적 의미가 있는 곳에서 주로 연주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에 참여했거나 이들과 친했던 밴드나 개인 혹은 DJ – 무키무키만만수, 이랑, 한받, 요한 일렉트릭 바흐, 404 등과 사적으로 교류를 계속하면서 음악 생활을 지속해 나갔다.

이들은 몇 번의 해체 선언과 번복을 거쳐 현재는 완전히 해체된 상태다. 이들이 남긴 음악은 유튜브를 통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의 음악을 듣는 행위를 감상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밤섬해적단은 과격한 가사와 음악을 통해 농담과 사회비판을 오갔던 밴드다. 이전의 인디 역사에서도 펑크 밴드들이 유사한 음악을 시도한 적이 있으나 밤섬해적단은 펑크의 계보에는 속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홍대 인디 밴드들의 모습을 비웃는 입장에 서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은 이들의 곡 ‘나는 씨발 존나 젊다’의 가사에서도 나타난다.

 

나는 씨발 존나 젊은 인디 뮤지션

아무데나 술을 먹고 퍼질러 자네

 

밤섬해적단을 굳이 규정한다면 운동권 밴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대학가에서 사회 운동의 물결이 사라진 시대에 나타나 운동권의 사상과 스피릿을 되살렸던 밴드가 바로 이들이다. 밤섬해적단은 자립 계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군의 음악가군들 속에서도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만큼 외부의 주목을 받고 또 공격받았던 사례는 없었다.

밤섬해적단은 과격한 포즈 때문에 남녀차별적이라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개인의 성향과 밴드의 음악은 분리해서 듣는 것이 이들에게 온당할 것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에 와서 이들의 활동을 살펴본다면 과격하지만 순수한 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순수함이 오히려 독이 되어 이들의 활동을 중단시킨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by 벨레 매거진

 

밤섬해적단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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